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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편집국장레터] 상자 8개에 담긴 외교부의 수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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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호 면

연일 이어지던 폭염이 주춤한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바라본 구름 한점 없는 맑고 청명한 하늘이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다. 2018.8.17/뉴스1

연일 이어지던 폭염이 주춤한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바라본 구름 한점 없는 맑고 청명한 하늘이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고 있다. 2018.8.17/뉴스1

 바람이 불었습니다. 선풍기, 에어컨의 도움 없이도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후덥지않은 게 새삼스러웠습니다. 폭염의 끝은 아니지만 오늘 아침의 선선함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VIP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박승희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24도의 아침을 맞은 기쁨으로 레터를 시작합니다.

날씨는 우리가 바라는 가을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뉴스들은 여전히 무더위 속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5년 만에 발표된 국민연금 재정추계도 그 중 하나입니다. 고갈 시기가 자꾸 앞당겨지고 있어 은퇴를 앞둔 아버지 세대를 초조하게 합니다. 많이 받을수록 좋은 게 인지상정입니다. 문제는 재원이 한정돼 있다는 점입니다. 은퇴한 아버지의 연금이 두툼해지려면 자식 세대의 세금을 담보로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금은 진영 싸움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이지만, 연금 문제가 제 때 해결되지 않는다면 세대 싸움이 가장 깊은 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역대 정부마다 안고온 폭탄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폭탄을 해체할 엄두를 못 냈고,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정신을 쏟느라 국민연금까지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민연금 폭탄은 더 짧아진 시간과 함께 문재인 정부 손에 넘겨졌습니다. 공교롭게도 국민연금 재정추계는 대통령 임기와 같은 5년 주기로 발표됩니다. 해법의 공식은 아주 쉽습니다. 재원이 고갈되고 있는 만큼 더 많이 내게 하고, 덜 받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더 내고, 덜 받게 하는 개혁인 만큼 해법의 실천은 아주아주 난해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악역을 해야 합니다. 해결한다 해도 칭찬보다는 욕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숙명이라는 생각으로 이 문제에 달려들어야 합니다. 게다가 노후 자금으로 국민연금이 유일한 사람들을 상대로 한 개혁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우선하는 문재인 정부에 이 폭탄이 넘겨진 건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차에 실린 외교부 압수품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검찰이 2일 오전부터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내 국제법률국과 동북아국, 기획조정실 등지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이날 오후 압수품을 담은 상자를 수사관들이 차에 싣고 있다. 2018.8.2   kims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차에 실린 외교부 압수품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검찰이 2일 오전부터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내 국제법률국과 동북아국, 기획조정실 등지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후 이날 오후 압수품을 담은 상자를 수사관들이 차에 싣고 있다. 2018.8.2 kimsd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외교부 사람들을 만난 일이 있습니다. 그들은 8월2일을 ‘한국 외교의 수치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외교부 청사를 급습해 압수수색을 한 날입니다. ‘일제기업 상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불법 개입’, ‘일본 상대 위안부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불법 개입’ 혐의 등이 이유였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관 10여명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7시간동안 외교부를 압수수색했습니다. 대상 부서는 국제법률국과 동북아국, 기획조정실 인사담당 부서 등이었습니다. 압수물품의 양은 무려 8상자나 됐다고 합니다. 2016년 청와대 압수수색 때의 7상자보다도 많습니다.
특별히 부끄러운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장관 부재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겁니다. 강경화 장관은 이날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참석 차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주요 간부들도 자리를 비웠습니다. 힘없는 직원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합니다. 둘째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수사의 핵심인데 정작 혐의의 주체격인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과 해당 판사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은 기각됐다는 점입니다. 물론 영장을 기각한 장본인은 법원입니다. 주체인 법원의 영장은 기각된 반면, 참고인 격인 외교부의 영장만 집행된 겁니다. 외교부 직원들은 “이 정부 들어와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는데 막상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말합니다. 부끄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국제법률국과 동북아국에는 외교부 내에서도 중요한 외교문서들이 몰리는 부서입니다. 8상자 분량의 압수물에는 외교기밀문서도 당연히 포함될 수 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외교기밀문서는 10년만에 공개되기도 하고, 20년만에 공개되기도 합니다.
 2012년에도 외교부가 압수수색 대상이 된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CNK인터내셔널 주가조작 의혹사건인 만큼 개인 비리가 대상이었습니다. 압수수색 대상과 범위도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번처럼 장관 부재중에, 중요 외교 문서를 다루는 부서가 압수수색을 당한 건 처음이라고 합니다. 특히 동북아국은 일본을 상대하는 부서입니다. 이면합의가 공개되고, 압수수색까지 당한 한국 외교관들이 앞으로 일본 외교관들에게 얼마나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수사에는 예외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점잖은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정부에서 임명한 믿을만한 장ㆍ차관, 국장들에게 해당 서류를 제출하게 할 순 없었을까요.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상자 8개 분량의 문서들을 압수해가는 한국 외교부를 지켜보면서 상대국 외교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정말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걸까요.

이번 주 중앙SUNDAY는 신성식 전문기자팀이 정리한 국민연금 개혁 기사를 스페셜리포트로 담았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임기가 연장된 김상균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년퇴직)의 인터뷰도 소개합니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방치하면 후세대는 버는 소득의 4분의1을 연금보험료로 내야 한다”며 아버지 세대의 책임론을 말했습니다. 2022 대학입시 안도 뉴스포커스로 2개면 다뤘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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