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몽골 '한류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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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한류(韓流)의 위력을 실감케 해준다. 모든 면에서 다 그랬다. 거리의 자동차 중 70%는 한국산 차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울란바토르 대학에서 가진 한국어 전공 학생 접견에는 몽골 전역의 대학에서 선발된 학생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꿈을 이루었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몽골 최고의 사립대인 울란바토르대 학생 1600여 명 중 450여 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문화를 원어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유학은 최고의 희망이었다.

학생들은 노 대통령에게 "한국 유학의 장학생 혜택을 늘려 달라" "몽골 국립대학에 한국문화원을 지어 줄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도 폭발적이었다. '대장금'을 필두로 '천국의 계단' '가을동화' '파리의 연인'에서 '성웅 이순신' '야인시대' 등 현지인들은 몽골에서 방영된 우리 드라마와 배우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울란바토르대의 한국어 전공 4년생인 소가르(21)는 "명.청 등 중국에 의해 침략받은 몽골 사람들이 일본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 동질감을 느껴 한류 확산에 긍정적이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침략의 역사가 있는 중국.일본보다 한국에 훨씬 친근감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8일의 국빈 만찬에서 몽골 측은 보드카로 연방 '원 샷'을 외쳤다. 좋은 친구가 오면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 대접을 하는' 풍습 때문이다. 한류의 확산이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지 몽골과의 경제 협력에 미치는 순기능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편 현지의 한류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울란바토르대 4년생인 자르갈(25.한국어전공)은 "한국 드라마가 재미는 있지만 폭력.패륜 등의 천편일률적 소재가 다반사여서 이젠 내용이 다 똑같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했다.

그는 "일부 한국인 여행객의 추한 향락적 모습들과 함께 2만5000여 명에 이르는 한국 내 몽골 근로자에 대한 일부 고용주의 비인간적 대우가 전해지며 점차 반(反)한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몽골 국립사범대의 정치학 교수인 뭉흐체첵은 지난해 12월 6일 몽골 최대 일간지인 우느드르에의 기고에서 "황금만능주의.빈부 차이.가정문제.부정부패.조직폭력을 주 소재로 한 한국 드라마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라마가 사회의 투영이라면 참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한류는 드라마.휴대전화.자동차 등 소비상품을 파는 측면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구성원의 생활습관과 도덕 등으로 구성되는 문화의 전파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 사회가 해외에 문화를 전파해 줄 만큼 반듯하고 존경받는 사회를 꾸려 가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소중한 한류 열풍을 부디 거품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해서다.

최훈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