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가서라도 … ' 정상회담 승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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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을 국빈 방문 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9일 오후 미니 나담축제(몽골 전통 축제인 나담축제를 국빈을 위해 행한 작은 규모의 행사)가 열리는 칭기즈 후레(城)를 방문했다. 울란바토르=안성식 기자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하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9일 몽골 발언은 상당히 전향적인 표현이다. 평양에 가서라도 남북 정상회담을 갖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2차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에 대한 노 대통령의 언급은 '북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만날 수 있다는 게 주 기조였다. 정상회담의 실용성을 강조한 접근이었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9일에는 어떤 조건도, 가능성에 대한 평가도 달지 않은 채 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에 대해 완전히 열어 놓고 있다"는 표현도 나왔다. '정상회담=북핵 해결'이라는 등식에 구속받지 않겠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의 언급에 무게감이 더해진 것은 다음달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방북이 임박한 시점이라는 점 때문이다. 서주석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8일 "김 위원장의 답방은 지난 2000년 6.15 당시 두 정상이 이미 합의한 사항"이라며 "이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DJ 방북 시) 자연스럽게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DJ 측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어떤 식으로든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할 것이며 이를 위한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 대통령의 9일 발언이 나온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3년 반 동안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문제와 표류 중인 6자회담의 해결을 위해 노 대통령이 승부수를 던지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미국 내에서 6자회담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고 북한의 위폐 제조, 인권 문제 등에 대해 연일 미국 행정부의 강도 높은 성토가 나오는 상황이다.

자칫 더 시간을 끌다가는 임기 내 북핵문제 해결이 어려워질뿐더러 한.미 관계까지 우려할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는 절박한 국면이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한 직접 설득의 카드를 만지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북핵 6자회담 등의 상황이 완전히 결렬된 상황에 대비한 시나리오도 마련했다"고 전하는 등 정부의 대북 정책은 최근 분기점에 서 있는 분위기였다.

노 대통령은 북측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단골 성토 메뉴인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북한에서 보기엔 불안한가 보다"라고 했다. "개성공단은 남침로를 포기한 것"이라며 평가했다. "북한 내부에도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불신을 제거해 줘야 한다"며 북한 내 온건파에 힘을 실어 줄 우호적 메시지를 전했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그러나 "전에 해 오던 얘기를 한 것"이라며 이날 발언이 '정상회담 제안'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야당 측은 노 대통령의 정상회담 관련 발언이 "지방선거를 앞둔 기존 지지층 결집용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도 보내고 있다.

울란바토르=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노 대통령 남북 정상회담 관련 주요 발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을 지속적으로 촉구하는 게 기본적인 정부의 태도다. 그러나 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부담스럽게 재촉하지는 않는 수준이다."(2005년 9월 27일, 중앙언론사 경제부장 간담회)

▶"남북 정상회담은 회담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북핵 문제를 풀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전략적으로 유효하면 좋은 것이고, 유효하지 않으면 정상회담 그것 자체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2005년 7월 6일, 서울지역 보도.편집국장 간담회)

▶"북한이 협력하고 어떤 대화든 진행시키면 한국은 항상 열려 있다. 일체의 조건은 없다."(2005년 4월 11일 베를린 동포간담회)

▶"북한이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현 상태에서 회담을 특별히 제안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김정일 위원장이 회담을 제의해올 경우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용의가 있다."(2005년 4월 8일, 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과의 회견)

▶"남북 정상회담 같은 큰 행사는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행사다. 그러나 북핵문제, 그리고 남북관계 진전에 얼마만큼 도움이 되느냐 하는 판단이 먼저 앞서야 한다."(2004년 7월 21일,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김정일 위원장을 지금 만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지금 만나도 김 위원장과 나 사이에 핵심적 문제가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2003년 5월 2일, MBC 100분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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