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수일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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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직자의 성전」으로 알려진 다산의 『목민심서』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공직에 있는 사람이 지녀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는 도덕성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직자의 평가는 재임중일 때보다 그 자리를 떠날 때 더욱 두드러진다고 강조했다. 그의 『목민심서』를 보면 해임 6조에 이런 대목이 있다.
목민관이 임무를 마치고 떠날 때 『마을의 부노가 동구 밖까지 전송 나와 술을 권하며 보내기를 어린애가 어머니를 잃은 것 같은 심정으로 정을 표현한다면 수령된 자 또한 인간세상에서 더할 수 없는 영광일 것이다.』
이러한 영광과는 정 반대되는 경우도 다산은 지적한다. 『해관되고 돌아가는 길에서 완악한 무리를 만나 그들의 꾸짖고 욕함을 받고, 악하다는 소문이 멀리 퍼진다면 이것은 더 할수 없는 치욕일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 「맑은 선비의 행동」「지혜 있는 선비의 행동」은 언제나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가 떠날 때 그것을 깨끗이 인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청렴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사소한 물건이라도 없애버리면 천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그런데 요즘은 어떻게 되었는지 공직에 머물렀던 자가 돌아가는 길에 술 한잔 받기는커녕 원성과 지탄을 받는 사람이 더 많다. 그뿐 아니라 재임중의 과오를 없애버리거나 남에게 떠넘기는 풍조까지 생겼다. 무언가 떳떳하지 못한 데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조궤라는 사람이 별가벼슬을 하고 있을 때 얘기다. 이웃 집 뽕나무의 열매가 자기 집 마당으로 떨어지자 그것을 일일이 주워 주인에게 돌려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으로 내가 청백하다는 소리를 들으려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이라도 남의 것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뜻』이라고 했다. 그 조궤가 영전이 되어 고을을 떠나자 마을의 노인들이 길을 막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별가께서 이 고을에 오신 후 물 한 방울 백성들과 주고받은 일없으니 오늘 전별하는 마당에 한잔 술이나마 올리고자 하나 공이 받지 않을 줄 알기 때문에 냉수일배로 석별의 뜻을 표하고자 합니다.』 조궤는 그 정성에 감복, 마지못해 물 한 모금을 얻어 마시고 마을을 떠났다. 얼마나 귀한 한잔의 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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