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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블? 좋은 지향점이지만 우리는 이제 신장개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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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사업부 권미경 대표가 9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네이버 영화사업부 권미경 대표가 9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극장 관객이 연간 2억 명대로 정체되고, 한국영화는 늘 나오던 이야기만 나온다고 욕먹던 상황에서 웹툰을 보니 상상의 한계가 없더군요. 김준구(네이버웹툰) 대표와 이 회사를 얘기하며 좋았던 게 어떤 틀을 규정하지 말자는 거였어요. 재밌는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 출범한 ‘스튜디오N’ 권미경(46) 대표의 말이다. 스튜디오N은 네이버웹툰이 설립한 웹툰 전문 IP(지식재산권) 브릿지 컴퍼니. 원작 웹툰이 성공적으로 영화‧드라마화 되도록 가교 역할을 하는 회사로, 자본금 전액을 네이버웹툰이 출자했다. 네이버로선 최근 동영상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인터넷 환경에 발맞춘 콘텐트 투자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지난달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네이버웹툰 IP를 활용한 드라마·영화 등의 확산이 영상 콘텐트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네이버는 올해 초 600억원에 이어 지난 6월 말 1500억원을 네이버웹툰에 출자했다.

새로 출범한 '스튜디오N' 권미경 대표 #네이버웹툰이 설립, 웹툰 영화화 주도 #"젊은 콘텐트, 중장년 좋아할 소재 많아 #제작사와 원작 사이에서 다리 역할 할 것"

권미경 대표는 올해초까지 CJ E&M 한국영화사업본부장을 역임하며 역대 극장가 흥행 1위 ‘명량’(2014)부터 ‘국제시장’(2015) ‘베테랑’(2015) ‘아가씨’(2016) 등 여러 히트작의 투자‧배급‧마케팅을 총괄해온 실력자. 9일 서울 을지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어제(8일) 법인을 설립하고 창업 고사를 지냈다”며 “혼자 다 먹겠단 회사면 안 왔을 것 같다. 기존 영화‧드라마 제작사와 협업하는 새로운 상생 모델과 성공사례를 만들어 글로벌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네이버웹툰 홈페이지 캡처 화면.

네이버웹툰 홈페이지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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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N은 최근 한국영화계에 새로 유입된 여러 자본 중에서도 검증된 IP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드라진다. 국내 최대 웹툰 기업의 영화 진출이 오랫동안 지적돼온 한국영화의 소재 고갈에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네이버웹툰이 영화에 뛰어든단 소식이 알려지고 한 달 남짓 만에 법인이 만들어졌다.  

“그사이 조직을 세팅했다. 네이버웹툰 파견 직원까지 현재 10명 정도이고, 더 늘어날 수 있다. 거의 마케터 출신이다. 지금 네이버웹툰이 보유한 아이템에서 시장성 있는 원작을 발굴할 눈, 외부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우선시했다.”

영화시장이 정체를 맞은 가운데 새롭게 출사표를 냈는데.  

“개인적으론 2억명대 정체구간을 지나면 관객 수가 더 떨어질 거란 생각도 든다. 극장 메인 타깃이던 20~30대 인구 수는 훨씬 더 줄었다. 이럴 때 영화시장이 커지려면 새로운 관객을 유치하거나 보던 관객이 더 보게 해야 한다. 결국 영화 편수와 새로움이 관건이다. 한때 프랜차이즈 빵집이 다 먹었던 골목상권에 다시 특색 있는 개인 빵집이 뜨고 있듯이, 웹툰 특유의 개성과 다양성으로 차별화할 수 있으리라 봤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  

“IP 소유자와 제작사 중간에 낀 형태다. 기존의 웹툰 원작 영화는 IP 소유자가 판권을 팔면 제작사가 알아서 개발‧개봉하는 방식이었다면, 저희는 영화‧드라마에 적합한 네이버웹툰 IP를 내부에서 기획‧개발해 업계 제작사와 공동제작한다. 1, 2억원을 들여 원작을 개발하고도 엎어질(프로젝트가 도중에 중단되는 것) 부담을 안고 있던 제작사들 입장에선 환영하는 분위기더라. 케이스에 따라 어떤 건 제작사가 일찍 참여할 수도 있고, 어떤 건 저희가 감독까지 정해 제작대행만 맡기려 한다. 제작지분도 몇 대 몇으로 딱 정해놓지 않았다. 이런 조직이 처음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별로 만들어가려 한다.”

제작 규모는.  

“해봐야 알겠지만 100억원대 영화를 커버해야 하는 (기존의 대형) 투자‧배급사와 달리, 저희는 판권료와 기획‧개발비면 클리어라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좋은 이야기가 있는데 자본 압박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좀 많이, 활발하게 진행해보려 한다.”

'스튜디오N' 로고. 이름의 'N'은 네이버(Naver)의 첫 글자와 '그리고'를 뜻하는 부호(&)를 합한 중의적 표현이다. [사진 스튜디오N]

'스튜디오N' 로고. 이름의 'N'은 네이버(Naver)의 첫 글자와 '그리고'를 뜻하는 부호(&)를 합한 중의적 표현이다. [사진 스튜디오N]

웹툰 팬의 큰 관심사는 어떤 작품을 영화·드라마로 만날 수 있느냐다. 현재 주목하는 웹툰이라면.

“몇몇 작품이 있다. 이미 판권이 팔린 게 많아 막상 할 게 없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더라. 웹툰을 하나둘씩 보며 소재의 다양함에 새삼 놀라고 있다. 우리 회사의 숙제는 모래밭에서 진주 찾기랄까. 인기 웹툰이 꼭 영상화에 적합한 건 아니다. 젊은 콘텐트지만, 중장년층이 좋아할 만한 소재도 있다. 오리지널 IP 2000여 개 중 10%정도 검토했는데 올해 말까지 전부 리뷰하고 내년 플랜을 짜는 게 목표다. 이달 안에 계약 발표하는 작품이 있고, 완성된 첫 영화는 2020년께 선보일 듯하다.”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처럼 여러 웹툰의 세계관이 섞일 수도 있을까.  

“안 되는 건 없다. 웹툰 원작자와 시나리오 작가가 협업해 새로운 이야기로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웹툰이 시즌1이라면 시즌2는 영화로 찍거나, 캐릭터 하나만 뽑아서 스핀오프‧프리퀄이 나오는 등 뭔가 방대해질 수 있을 것 같다.”

권미경 대표는 이전까진 판권이 팔리고도 개발이 제대로 안 되거나, 판권료를 속여 되파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웹툰이 직접 스튜디오N을 출범하고 웹툰 영상화에 나선 건 잘못된 관행을 없애는 한편 “웹툰의 생명력을 강화하고 원작자들이 지속적으로 작품 창작에 몰입해”(김준구 대표) 양질의 콘텐트를 생산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콘텐트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는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겠단 것이다.

권 대표는 원작 웹툰에 맞는 다양한 규모, 그 중에도 투자 안전성이 높은 200~400만 관객 규모의 중간 사이즈 작품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수상한 그녀’(2014) ‘베테랑’처럼 제작비로 중간 사이즈 영화가 800만, 1000만 관객이 든다는 게 ‘로또’에 가까운 확률이지만 그런 흥행사례가 나오려면 타율적으로 많이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1편에 이어 2편도 흥행돌풍을 일으킨 ‘신과함께’ 같은 블록버스터도 나오나.  

“당장은 아니어도 할 것 같다. 막말로 제가 본 웹툰 중엔 제작비 1000억원은 있어야 하는 작품도 있다. 욕심은 나지만 지금 한국시장 사이즈론 소화가 안 된다. 중국‧일본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미국‧일본‧대만‧태국‧인도네시아 등에도 서비스되고 있다. 해외 영화사와 직접 협업하거나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할 수도 있지 않나.  

“물론이다. 웹툰은 인종이 없잖나. 해외에선 ‘콘텐트가 여행한다’는 말을 쓰는데, 우리도 그렇게 될 듯하다. 이미 중국‧일본에서 사가거나 관심 갖는 아이템도 있고. 국내에서 자리 잡고 글로벌로 나가는 시기를 좁히는 게 제 숙제이기도 하다. 언젠가 ‘반지의 제왕’ 같은 세계적인 대작이 한국에서 나오는 것도 보고 싶다.”

네이버 포털사이트와 연계한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 구축 가능성도 있나.  

“고려하고 있진 않다. 현재로선 극장용 영화와 TV 드라마가 목표다.”

올해 초 1편이 1440만 관객을 모은 데 이어 2편도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과함께' 역시 네이버에서 연재된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올해 초 1편이 1440만 관객을 모은 데 이어 2편도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과함께' 역시 네이버에서 연재된 주호민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권미경 대표는 이력이 독특하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광고 회사. 이후 CJ 엔터테인먼트에서 영화 마케팅을 시작했다. 월트디즈니코리아 이사로 자리를 옮겨 ‘아이언맨’ ‘어벤져스’ 등 마블 히어로 영화를 성공적으로 개봉했고, 다시 CJ로 돌아가 여성 마케터 출신으론 최초로 한국영화를 총괄하는 임원 자리까지 올랐다.
그는 “CJ에서 연간 10편 넘는 한국영화를 해오며 누구보다 탄탄한 네트워크를 쌓아왔다”고 자부했다. 또 “투자‧배급사에선 남이 차려준 밥상에 앉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부분들이 답답했다”면서 “계속 안주할 순 없다는 생각에 올해 초 순수하게 쉬려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는데 우연찮게 연이 닿아 ‘내가 차리는 밥상’ 쪽으로 오게 됐다. 다른 투자사 오퍼도 있었지만, 한국영화산업이 활성화하는 데 제 능력이 일조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스튜디오N에) 오게 됐다”고 했다.

상생을 거듭 강조하는데.  

“IP 소유자인 네이버웹툰이 직접 제작하면 되지, 왜 제작사에 지분을 나눠주냔 사람도 있더라. 그런데 IP가 한두 개면 몰라도 그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는데 수익을 독식하겠단 생각은 잘못 된 것 같다. 특히 작가 양성이 시급하다. 원작 웹툰을 각색할 작가들의 부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실력이 있음에도 오랫동안 기회를 잡지 못한 감독‧작가들을 창작지원하면 영화산업을 시스템적으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스튜디오N을 통해 영화산업에 있어 감초 역할을 하게 되길 꿈꾼다.”

한국의 마블스튜디오로 거듭날 수 있을까.  

“좋은 지향점이지만, 이제 신장개업한 회사다(웃음). 앞으로 지켜봐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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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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