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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가입자 90% '귀차니즘' 빠져 수익률 엉망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일의 퇴직연금 이야기(12)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경제학에 대한 최소한의 기초 지식이다. 경제학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경제적 인간에 기반을 둔 학문’이다. 그러나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인정하며 때론 감정적 선택의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퇴직연금 운용과 관련한 두 가지 편견 

퇴직연금 가입자의 자산운용 행태를 보면 ‘현상유지편견’, '모호성 회피편견'이 동시에 나타난다. [중앙포토]

퇴직연금 가입자의 자산운용 행태를 보면 ‘현상유지편견’, '모호성 회피편견'이 동시에 나타난다. [중앙포토]

퇴직연금 자산운용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행동경제학적 접근 중 하나가 ‘현상유지편견’이다. 유리한 것보다 익숙한 것에 투자하려는 습성으로 인해 기존에 자기가 운용하고 있는 자산을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고민하고 선택하는 것을 싫어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기대이익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민은 내가 아니고 누가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모호성 회피편견’을 들 수 있다. 잘 모르는 것에는 투자를 안 한다는 고집 같은 것을 말한다. 막연한 두려움은 일단 회피하고 보자는 심리로 투자에 접근한다. ‘아무래도 잘 아는 투자가 낫지 않겠어요’라는 것이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자산운용 행태를 보면 위의 두 가지 행동경제학적 요소가 동시에 나타난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을 지시할 때 이런 요소가 두드러진다.

운용지시란 퇴직연금 가입자가 사업자에게 자신의 적립금을 어떤 상품에 할당할지를 지시하는 것을 말한다. 운용대상은 주로 원리금 보장상품이나 실적배당상품이다. 투자환경의 변화를 읽고 포트폴리오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경해 나가는 것이 운용지시의 목적이자 운용성과를 내는 방법이다.

그런데 아래의 <표1>에서 보면 2017년 중 전체 가입자의 90.1%가 운용지시를 전혀 변경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용지시변경은 부담금 투입비율을 바꾸거나(동일한 운용상품의 운용금액 비중만 변경) 운용상품을 교체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운용지시를 변경한 가입자(9.9%)의 연중 변경횟수는 평균 2.8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운용지시 변경현황(’17년)(단위: %, 회). [자료 금융감독원]

운용지시 변경현황(’17년)(단위: %, 회). [자료 금융감독원]

<표2>의 운용지시 변경 내용을 보면 운용상품의 수는 평균 2개 미만이고, 퇴직연금 사업자별로는 은행·보험 가입자는 원리금 보장상품을, 증권사 가입자는 실적배당형 상품을 상대적으로 많이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입자가 자신의 적립금에 대해 운용지시를 하기 위해서는 사실 상당한 지식과 관심이 필요하다. 지식이 부족한 경우 발품을 팔아서라도 퇴직연금 사업자들의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소중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적립금 운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평균 운용상품 수(’17년)(단위: 개). [자료 금융감독원]

평균 운용상품 수(’17년)(단위: 개). [자료 금융감독원]

그러나 우리나라 퇴직연금 가입자들 운용지시변경은 90% 이상이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연 3회 미만이다. 게다가 증권사 가입자를 제외하고는 원리금 보장상품으로 운용지시를 한다.

이런 결과는 행동경제학의 ‘현상유지편견’과 ‘모호성 회피편견’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일단 ‘귀차니즘’으로 현상유지를 하고 잘 모르는 실적배당상품에는 ‘모호성 회피’가 동시에 작용한 것이다.

운용지시와 변경에 최선 다해야 

물론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적극적으로 한다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비록 퇴직연금 펀드는 환매수수료가 없다 해도 잦은 운용지시 변경은 시장의 흐름을 거스를 위험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운용지시를 변경하지 않는 이유가 ‘현상유지편견’과 ‘모호성 회피 편견’이라면 문제가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 성공은 오직 자신이 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가입자가 모르고 있거나 안다고 해도 그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명심해야 할 한가지가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운용의 성공을 모두 원하겠지만, 그에 앞서 운용지시와 그 변경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성일 (주)KG제로인 연금연구소장 ksi282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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