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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윤종빈 감독 "이성민 캐릭터에게 바란 건 츤데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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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작' 촬영현장의 윤종빈 감독.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촬영현장의 윤종빈 감독.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첩보영화인데, 총격전은커녕 격투 장면도 없다. 8일 개봉한 '공작'은 신분을 감추고 적에게 접근한 첩보원, 그를 의심하면서도 손을 잡으려는 상대방, 이런 상황과 거듭된 만남에서 긴장을 이끌어낸다. 시선을 붙잡는 건 이런 연기와 연출만 아니라 이야기의 배경이 남과 북의 실제 상황이란 점이다.

윤종빈(39) 감독은 1990년대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한 안기부 대북공작원의 실화를 모티브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개봉 전날 인터뷰에서 그는 "이야기 자체가 너무 흥미로웠다"고 했다. "창작자의 머리에서 나올 수 없는 얘기니까. 또 한국 현대사나 정치와 관련돼 있고. 첩보영화의 본질적인 거를 비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뭐가 그렇게 흥미로웠나.
"한국에서 북한에 이런 스파이를 침투시켰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첩보물로 이름난 작가인) 존 르 카레 소설에서 보는 과정이지 않나. 신분 세탁을 하고, 사업가로 위장하고, 북한에 들어가 1호(김정일)를 만나고, 너무 드라마틱 하더라.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딜레마에 빠지고,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고 하는 게 너무 영화적이었다." 
첩보영화의 본질을 비튼다는 의미는.
"첩보물 자체가 냉전시대의 산물이잖나, 냉전적 사고는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건데 이 스파이는 군인, 제일 중요한 건 피아식별이다. 그런 사람이 적을 하나의 인간으로, 동지로 보게 되고 이해하는 스토리 자체가 첩보영화의 본질을 비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주인공 박석영(황정민 분)은 육군 정보사 군인 출신으로 안기부 공작원 '흑금성'이 되어 비밀 임무를 맡는다. 90년대 당시 북한 핵개발 실태를 파악하는 것. 중국에서 북한의 외화벌이를 담당하는 리명운(이성민 분)에게 접근하고, 북한에 직접 들어가기 위해 한국기업 광고를 북한에서 촬영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리명운 역시 주변의 견제에도 사업을 성사시키려 애쓰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상대에 따라 박성영이 고향 대구 사투리와 서울말, 서로 다른 말투를 쓰는데.
"여러 이유가 있다. 장르적으론 액션 없는 첩보물이라 관객에게 다른 식의 재미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생각한 첩보원은 액션하는 무도가, '본'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일당백의 싸움을 잘하는 무도가가 아니라 국익을 위해 상대를 속여야하는 연기자였다. 내부적으로 얘기한 컨셉이 ‘연기하는 공작원’이다. 그걸 영화로 표현하고 관객들이 구별할 장치가 있었으면 싶었다. 안경도 실제 흑금성이 원래 눈이 좋은데 공작원 할 때는 안경을 쓴 것에 착안했다."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감독은 "예측이 안 돼야 재미있는, 긴장감이 유지되는 얘기라고 생각했다"며 "(영화 시작하고) 한 시간 반까지 박성영이 어떤 인물인지 정확하게 파악이 안됐으면 싶었다"고 말을 이어갔다. 박성영의 가족 얘기를 전혀 등장시키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할 때, 그 순간에 '아 이런 사람이구나' 드러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성민의 연기가 좋더라. 리명운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적은 없는데.
 "두 사람이 서로 의심하고 견제하는 관계, 그런데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얘기가 돼야했다. 표현하지 않아도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차가운 척 해도 따뜻함이 묻어나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말로 '츤데레'라고 하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예를 들어 기자가 너무 질문을 직설적으로 하면 내 입장에선 싫겠지만 결과물이나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존중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지 않나. 두 사람 관계도 그런 것 같다. (배우 이성민은) 저와 '군도'도 했고, '보안관'은 제가 제작자여서 잘 안다. 드라마 '골든 타임' 때 보고 처음 '군도'에 캐스팅했다. '골든 타임'도 약간 츤데레 캐릭터였다."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배우들에게 듣자니, 액션 없이 대사로 긴장감을 만드는 연기가 퍽 버거웠다고 하던데.
"저도 안 해봐서 몰랐다. 대본으로는 써놨지만. 5분 동안 대화하는 것만으로 정말 안 지루할까. 김정일 만나는 장면은 대본상으로 7,8페이지였다. 7,8분을 대화로만 끌고 가야하는데 말이 좋아 긴장감이지 이게 과연 될 지 나도 안 해봤으니 모르는 거였다. 배우들도 기댈 데가 없는 거다. 심지어 움직이지도 못한다. 김정일 앞에서 움직이면서 얘기할 수 없잖나. 시선도 못 마주치니까. 장면마다 방법론을 고민하며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순제작비 165억원을 들인 '공작'은 대만의 세트와 거리에서 중국 배경 장면 등을 촬영했다. 평양 시가지 전경이나 이를 공중에 내려다 본 부감 샷 등은 외국 촬영팀이 찍은 영상을 구입해 합성한 결과다. 국내에서 북한 장마당 장면을 촬영할 때는 현장에 써놓은 북한선전문구를 보고 주민들이 '북한찬양단체가 나타났다'며 신고를 해서 촬영이 중단된 날도 있었다고 한다. 눈길을 끄는 김정일 면담 장면은 국내에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면담 장면에 개가 나오는 게 인상적이다.
"직접 만났던 사람들 증언 중에 제일 구체적이고 재미있었던 게 탈북시인 장진성씨가 쓴 '친애하는 지도자에게' 란 회고록이다. 각 잡고 서있는데 강아지가 와서 발을 핥았다고 하더라. 애완견을 좋아하고 많이 기른다고 한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뭔가 설명이 되는 것 같고. 그 공간에서 제일 자유로운 건 애완견이잖나."  
영화 '공작' 촬영현장.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촬영현장. 사진=CJ엔터테인먼트

김정일 역할을 맡은 배우 기주봉에게 따로 주문한 게 있나.
"제게 계속 육성을 들려달라고 했는데, 김정일 말투를 흉내내지 말라고 했다. 사람들이 김정일 얼굴은 굉장히 잘 안다, 근데 김정일 육성을 아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없다. 따라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굉장히 빠르고 못 알아들을 말투다. 김정일을 흉내내는 게 아니라 김정일처럼 보이는게 중요하다고 했다."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사진=CJ엔터테인먼트

 김정일 분장은 할리우드 분장팀의 솜씨다. 북한 최고 권력자 앞에선 위기를 넘기지만 뜻밖의 곳에서 박성영에게 위기가 닥친다. 흑금성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난 것은 97년 대통령 선거와 이른바 북풍사건을 통해서. 영화에도 중요한 고비로 등장한다. 논란의 여지도 있다.
 실제 흑금성, 실존인물 박채서씨의 회고록과 과거의 여러 보도들에 대해 감독은 "제가 크로스 체크하기 불가능한 팩트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김정일 만났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주장'이다. 그걸 확인할 데가 없다. 북한에 물어볼 수도 없고." 대신 그는 관련 사안을 오래 추적한 김당 기자 같은 언론인의 크로스 체크를 신뢰한다며 "저도 배운 사람이고, 제가 봤을 때 (회고록이) 굉장히 디테일해 소설 같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영화 '공작' 촬영현장.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 촬영현장. 사진=CJ엔터테인먼트

마지막 장면은 2005년 시점인데.
"엔딩을 정해놓고 시나리오를 썼다. 처음에 제가 떠올렸던 게 이효리씨가 나온 광고, 이 광고를 만들었던 배후에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다."
이효리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던데.
한번 거절당했다가 손편지로 진심을 담아서 썼다. 처음에 부탁을 했을때는 (특별출연을) 한다고 했는데, 대본을 주니까 내용을 보고 이효리씨 자신이 이효리를 재연한다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살려달라고, 안 나오면 안된다고 했다.   
영화 '공작'의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공작'의 윤종빈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는 "영화를 보통 5,6개월 편집하는데 이번에는 10개월을 했다"고 전했다. '공작'은 지난 5월 칸영화제에 먼저 선보인 뒤 한국에 돌아와 다시 편집을 손봐 전체 길이가 4분 가량 줄었다. 이해도가 떨어지는 대사 등을 줄이고, 잘 안들린다는 지적에 내레이션을 다시 녹음했다고 한다. 이런 편집 과정을 포함해 그는 "영화 한 편 할 때마다 100번씩 보게 된다"고 했다. "내용도 다 알고, 대사와 커트까지 다 외우는데 얼마나 지루하겠나. 신기한 게 이 영화는 또 보게 된다. 이야기와 연기의 힘이구나 싶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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