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바다」영일만|침몰선“인양이냐 포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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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인양이냐, 포기냐….』동해안 최대의 바다목장 경북 영일만을 순식간에 「죽음의 검은 바다」로 몰아넣은 유조선 경신호 침몰사건이 발생한지 9개월째 접어들도록 뚜렷한 대책이 마련되지 못하고있다.
지난 2월24일 영일군 대보면 장기갑 앞바다에서 벙커C유 2천6백50t을 싣고 수심95m에 가라앉아 「바다속의 시한폭탄」으로 동해안 5만어민들의 가슴을 죄고있다.
당국으로서는 이 「골칫거리」를 어떤 방법으로도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론만 거듭할뿐 구체적인 작업에 나서지 못하는 가운데 국정감사에서마저 한마디 거론조차 않아 어민들의 원성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봉쇄작업>
당국이 경신호 기름봉쇄작업에 나선 것은 사고발생 32일만인 3월25일.
수심50m 이상은 우리기술진으로서는 손을 못써 공사를 6억에 맡은 인천 한성살베지사가 일본에서 3인승 특수잠수정과 기술진을 불러다 유조선 탱크뚜껑에서 기름이새고 있는 경신호가 해저95m 바다밑 갯벌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처음 확인했다.
이후 7월17일까지 기름이 새는 27곳을 찾아 유출구멍을 막은 일본기술진들은 『기름유출구멍을 모두 봉쇄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철수했다.
그러나 1개월이 지난8월말 침몰지점해역에 폭 40m, 길이4km의 큰 기름띠가 새롭게 나타났다. 조사에 나선 해경은 이 기름이 경신호에서 유출된 것을 확인, 봉쇄작업이 실패로 끝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해경은 인천 한성살베지사와 맺은 봉쇄작업계약을 해약하고 계약이행 보증금 1억2천만원을 국고에 귀속시켰다.
이렇듯 봉쇄작업실패에 따른 후속조치는 재빨리 취했으나 봉쇄작업재개등 인양대책은 서울올림픽과 연이은 국정감사로 흐지부지, 질질 끌어오고 있다. 벙커C유 오염지역에 유화제를 뿌리는 것이 방제작업의 전부.

<오염피해>
봉쇄작업이 실패한 후 기름이 계속 새나오는지도 벌써 4개월. 침몰 경신호의 유출 벙커C유는 영일군 대보면에서 불과 6.8km 떨어진 앞바다에 폭 40m, 길이 6km가 넘는 거대한 기름띠를 형성, 조류를 타고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2월 경북영일·영덕관내 39개 공동어촌계어장 7백㏊와 정치망 19개소등 1천9백㏊의 바다목장에 시커먼 벙커C유가 덮쳐 15억원이상의 피해를 냈다는 것이 어민들의 주장이다.
이럼에도 월성군은 지난3월 부산대에 피해조사를 의뢰했다가 조사비가 2억원이 들고 조사기간도 6개월이 걸린다는 통보를 받고 아예 피해조사마저 포기해 갈수록 늘어나는 피해보상 문제가 뒷전에 밀려 어민들의 아픔을 갈래갈래 찢어 놓고 있다.
이때문에 수십년 목줄을 걸어온 1만2천7백가구 5만 어민들은 『세금은 꼬박 꼬박 받아내면서 경신호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는지 못 세우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핏발을 세우며 발을 구르고 있다.

<대책>
정부는 지난6일 관계기관이 참석한 가운데 국무총리실에서 경신호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선체인양 ▲시멘트 몰딩 ▲수중폭파 ▲선체 심해이동등 4가지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따른 경비는 경신호가 3백50만달러(26억6천만원)를 가입한 영국P&I 보험회사와 정부에서 부담한다는 원칙만 합의를 보았을뿐 아직까지 구체적인 작업방안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인양만해도 50억원이 드는 데다 사전조사·인양기술·장비등 구체적인 조사가 뒤따라야 하므로 시기가 언제 될지 모르는 막연한 상태.
「바다속의 시한폭탄 - 경길호」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해일과 폭풍이라도 밀어닥치면 끝장이다. 선체가 심한 수압에다 동요·마찰등으로 터질 수밖에 없다. 동해안에는 겨울철이면 해일등이 잦아 잘못하면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판이다.
이런 점을 들어 해양전문가들은 『정부가 회의나 열고 있을 때가 아닌 긴박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걱정했다. 하루 속히 대책위를 구성, 정부지원아래 영국·미국등 선진외국에 맡겨 기름봉쇄작업을 재개한 후 선체인양작업을 펴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아니면 선체를 시멘트몰딩을 하거나 기름이 실린 선체를 수중폭파 시키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 수중폭파는 침몰유조선의 벙커C유를 동시에 태워 분해시킬 수 있는 반면, 수중폭파에 따른 어장피해와 생태계변화등 문제를 안고있다.
「인양이냐」「수중폭파냐」아니면 「포기냐」어쨌던 이 방법밖에 별 도리가 없다. 시간만 끌다 오히려 기름탱크가 수압등에 못 이겨 터지는 것보다는 수중폭파가 낫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정부가 거론한 4가지방법 모두 장단점이 있다. 다만 어느 것이든 선택의 결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피해와 후유증도 줄어 들고 어민보상문제도 빨리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탁경명·김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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