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안이하게 대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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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지인 도두리에서 군 장병들이 훼손된 철조망을 점검하고 있다. 그 옆에 군사시설보호구역 푯말이 쓰러진 채 방치돼 있다. [평택=연합뉴스]

국방부가 고민에 휩싸여 있다. 5일 평택 미군기지 예정지에서 장병들이 과격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폭행당한 이후 국방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과 대처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7일 국방부 홈페이지엔 '평택에 아들이 가 있다'는 익명의 네티즌 '근심하는 부모'가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질타하는 글을 올렸다. 이 네티즌은 "보호장비도 없이 시위대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는데 울화가 치민다"며 "장관님의 자식이 가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라고 했다. 다른 네티즌 '울분남'은 "쇠파이프.죽봉.몽둥이로 무장한 폭도들 앞에서 맞더라도 저항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당신들이 정말 지휘관 자격이 있기나 한 것이냐"고 따졌다. 국방부와 철조망 설치 지휘 부대인 수도군단에도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국방부는 4일 평택에 비무장 병력 3000명을 투입했다. 동시에 "설령 두들겨 맞더라도 맞대응하지 마라"고 지시했다. 민간인과의 충돌이 빚을 수 있는 후폭풍을 우려해서다. 실제 일부 시위대는 "군인들에게 폭행당했다"며 허위 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평택엔 전경이 배치돼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군의 대응은 치밀하지 못했다. 시위대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시위대가 다시 몰려올 것에 대비해 병사들에게 보호장구를 지급하거나 전경을 계속 배치했더라면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재향군인회 정창인 연구위원은 "시위대 대부분이 한.미 동맹 와해와 미군 철수를 주장해온 반미 단체 소속으로 이들은 그동안 상습적으로 쇠파이프와 죽봉을 휘둘러 왔다"며 "그런데도 비무장 병력을 보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현재 병사들에게 방패와 경계봉.방독면 등 비(非)살상 개인보호장구를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뒷북 대응이다. 한 군 관계 단체 회원은 "앞으로도 과격단체의 기습 시위가 예상되는 만큼 개인보호 장구의 지급은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사한 경우에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7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서 빚어진 시위대의 불법 행위에 대해 "평화적 시위는 보장하되 불법시위와 폭력행위는 결코 용납하지 말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격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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