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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 시위 앞두고 ‘한남 무작위로 죽인다’ 피켓도

중앙일보

입력

불법촬영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가 4일 오후 4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다. 집회가 임박하면서 어떤 구호와 피켓이 등장할지에 관심 쏠리고 있다.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에 올라온 4차 시위용 피켓 사진. 불법 촬영 영상을 공유하는 남성들을 비꼬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에 올라온 4차 시위용 피켓 사진. 불법 촬영 영상을 공유하는 남성들을 비꼬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지난달 9일 열린 3차 시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칭하는 ‘문’을 거꾸로 뒤집은 ‘곰’ 피켓이 등장했다. 이 글자의 해석을 두고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13년 한강 마포대교에서 투신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다 숨진 남성 인권운동가 성재기씨의 이름을 인용한 ‘재기해(자살하라는 의미)’ 구호도 등장했다. 이 때문에 패륜적인 피켓·구호 내용이 사람들의 반감을 일으키고 본래 시위의 취지를 퇴색시킨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경찰 여남 성비를 9:1로 만들라는 내용의 피켓. 3차 시위 당시에도 이와 같은 구호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경찰 여남 성비를 9:1로 만들라는 내용의 피켓. 3차 시위 당시에도 이와 같은 구호가 등장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주최 측이 운영하는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에는 지난달 26일부터 4차 시위가 열리는 4일까지 열흘 동안 100여 개의 다양한 피켓 사진이 올라왔다. 시위 참여자들은 직접 만든 피켓을 사진 찍어 게시판에 올리며 서로 시위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이 중에는 ‘여성들의 안전을 보장하라’ 등 비교적 온건한 문구도 있지만 ‘우리 목소리 무시하면 한남을 무작위로 죽인다’ ‘경찰 여남 성비 9:1로 만들어라’ 등 논란을 촉발할만한 구호도 있다.

경찰 성비 등 논란 문구 줄줄이 재등장 #남성 외모, 성적 비하 표현 다양 #“취지 왜곡해 본질 흐린다” 비판도 #“과격한 구호만 조명해선 안 돼” 반로도

피켓 중에는 '길가는 한남(한국남자) 69명을 무작위로 죽인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69(6.9cm)는 한국 남성을 성적으로 조롱하는 의미로 쓰인다.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피켓 중에는 '길가는 한남(한국남자) 69명을 무작위로 죽인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69(6.9cm)는 한국 남성을 성적으로 조롱하는 의미로 쓰인다.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이번 시위에 등장할 피켓 중에는 온라인에서 논란이 된 ‘십이 한남(한국남자)’ 이미지도 포함됐다. 십이한남은 열두 종류의 남성 얼굴을 12시를 기점으로 시계방향으로 나열한 것으로, 한국 남성들의 외모를 비하하기 위해 쓰이는 그림이다. 여성들이 그 동안 남성에 의해 외모를 평가받거나 조롱받아온 과거를 ‘미러링(상대방 행위를 따라하는 것)’하는 용도로 쓰인다.

한국 남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십이한남' 이미지도 카페에 등장했다.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한국 남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십이한남' 이미지도 카페에 등장했다.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아무리 오랫동안 비대칭적 관계에 있었다 해도 여성 일반에 대한 혐오감이나 남성 일반에 대한 혐오감은 둘 다 범죄적 감정”이라며 “분노를 이해하는 것과 분노의 패륜적 발산을 용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살인 등 강력범죄 가해자의 98%가 남성이라는 점에 착안, 여성들은 몰카 범죄 등의 피해자로 살면서도 위해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피켓.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살인 등 강력범죄 가해자의 98%가 남성이라는 점에 착안, 여성들은 몰카 범죄 등의 피해자로 살면서도 위해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피켓. [사진 불법촬영편파수사규탄시위 카페]

그는 3차 집회 당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 대통령은 인격을 가진 ‘구체적 인물’로, 지난 수천 년 동안 여성들이 당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여성들 개개인에게 구체적 인간을 저주할 권리가 부여되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은 바 있다.

과격한 구호보다 시위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문제가 된 구호는 4시간 집회에서 핵심이 아니었지만, 그 부분만 호도됐다”며 “혜화역 시위(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를 워마드와 등치시키려는 움직임은 여성 인권 운동의 목적성을 가리고, 정당성을 없애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그는 “결국 시위에 나서려는 여성들에게 부담을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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