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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보다 무서운 5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삼청교육이 왜 나빠? 요즘 와서 모두들 욕을 하지만 80년 당시만해도 모두 잘하는 짓이라고 두손들고 환영하지 않았던가
오랫만에 만난 한 친구가 도전적으로 물어봤다.
사실 그 당시 신문을 들춰보면 온통 환영 일색이다. 삼청교육의 발단이 된 정화운동을 지지하는 지역추진대회가 지방마다 열렸고 각지방·각급학교 단의로 정화외원회의 구성이 지시되었다. 그 와중에서 사회를 괴롭히던 많은 잡범들이 제거되었다는 홍보가 남발됐다. 그 결과 폭력배가 사라져 「유흥가의 뒷골목이 주먹들로부터 풀려나고 부녀자들이 안심하고 밤길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는 기사도 눈에 띈다.
「정화운동」 을 지지한 추진대회나 신문보도들은 그 당시의 험악한 분위기로 보아 강요된 선택으로 나온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땠을까. 그런 강압의 분위기가 없었을 경우 대다수 국민들은 「정화운동」 을 반대했을까, 지지했을까. 또 지금 이 시간에도 앞서 인용한 친구의 말처럼 삼청교육을 갈한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여론에 휩쓸려 내색을 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사회에 어느 만큼 존재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은 5공 비리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물어야 하고 사회의 합의된 대답을 얻어내야 할 중요한 물음이다. 왜냐하면 5공 비리 속에는 권력자의 탐욕에서 나온 축재의 부분과 함께 사회를 자기들의 뜻대로 개조하려는 의지의 부분이 담겨있고 이 뒷부분에 대한논의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부저낮『재의 부분은 권력자들이 기고만장하던 시절에도 쉬쉬해 왔고 그 내막이 드러난 지금에도 『나는 모른다』 고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사자들 스스로도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자인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라서 5공 비리의 이 부분은 당사자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또 정부가 적극성을 가지고 대응할 경우 비교적 찌꺼기 없이 매듭 지어질 수도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그 후유증도 일단 철저한 사법적 처리가 이루어지면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5공 비리 중 그들이 일방적으로 시도했던 사회개조시도와 그 방법의 부분은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가 않다. 언론 통폐합의 무법적 추진에 대해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는 최근 발언이라든가 개혁의 진의를 민간 관료가 왜곡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한 「개혁주도세력」의 주장을 보면 그들 사이에는 별로 뉘우침이 없다.
오히려 기회가 오면 다시 해보겠다는 의도조차 엿보인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법으로 다스리기 어러운 5공 비리의 이 부분에 대해 한 목소리로 응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삼청교육이 담고 있는 사회개조의 철학은 몸에 종기가 날 때 메스로 이를 도려냄으로써 몸 전체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이다.
이 생각은 어느 사회나 안고 있게 마련인 어두운 구석을 범리현상으로 간주한 면에서, 그리고 이것을 탈법적 수단으로라도 제거해야 되며 또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은 점에서 비리임에 틀림없다.
동시에 이 생각은 그런 무리를쓸때 사회자체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점을 간과한 점에서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다.
이런 무리한 생각은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여러 갈래의 「개혁」 조치에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해직조치·공무원 숙정· 정치인의 정치활동금지가 그렇고, 심지어 과외공부를 시킨 학부모를 직장에서 몰아내는 조치까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관련된 사람을 모두 제거하면 된다고 믿었던 듯하다.
돌이켜 보면 「불량배  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킨 삼청교육의 정신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정치인을 제거하고 어느 사이 자식을 남달리 더 교육시킨 죄밖에 없는 일반시민을 정상적 사회생활로부터 몰아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되자 삼청교육으로 자기 가족이 마음놓고 밤길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보통사람은 바로 같은 힘에 의해 스스로의 존재가 위협받게 되었고, 그런 위협이 증폭되면서 5공시대의 우리 사회를 짓누른 공포분위기로 확산된 것이다.
삼청교육 입안자들의 의도는 단순하기는 해도 순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검거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에 위협걱 존재였을 개연성도 충분히 있다. 이들을 격리시킴으로써 사회를 보호하고, 그래서 얻은 국민의 호응을 타고 집권의 길을 다지러 한 것이 분명하다. 삼청교육의 근거가 된 계엄 포고령 13호가 나온지 2주만에 전두환 장군이 대통령후보로 추대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의 무법적 독소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결국 5공시대의 도덕성을 뿌리째 갉아먹는 온갗 인권유린 사례로 번져 나갔던 것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속담이 가장 적절한 경우가 삼청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복지원 사건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5공 비리의 척결은 권력자의 물질적 탐욕을 응징하는 것 못지 않게 우리 사회에 뿌려놓은 반도덕적 사고의 왜곡을 치유하는 과제에도 중점이 두어져야할 것이다.
사회는 결코 질병을 앓고 있는 인체가 아니며 최악의 범법자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때 최선의 시민도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는 거듭 사회의 합의된 가치관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5공 비리의 척결은 그와 같은 가치관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만 완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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