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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거래 의혹’ 미공개 문건 196건 공개 … 청와대·국회·검찰 전방위 로비 정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대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 410건 중 그간 공개하지 않았던 196건(중복 문건 32건 제외)을 31일 공개했다.

양승태 대법원, 상고법원 설득 전략

문건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청와대, 법무부, 국회 등을 상대로 설득 전략을 짠 정황이 드러나 있었다. 청와대 관련 문건은 14건, 국회는 46건, 법무부는 14건(중복포함)이었다.

이중 청와대 로비 정황이 담긴 문건들은 대부분 2015년 8월 6일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오찬을 한 전후로 작성됐다. 2015년 4월 5일 작성된 ‘BH로부터의 상고법원 입법추진 동력 확보방안’ 문건에는 “BH(청와대)가 주도하여 정권의 성과·업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사법제도 개선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상고법원안을 포함시켜 함께 추진”이라고 적혔다.

대법원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뒤에는 ‘하야 가능성 검토’ 문건을 작성해 박 전 대통령의 하야 가능성을 분석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작성된 ‘하야 정국이 사법부에 미칠 영향’이란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에서는 계속 진보적 판단을 내놓아야 함”이라며 향후 법원 판결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법원행정처는 법무부, 검찰 등을 상대로도 ‘빅딜’ 카드를 내세워 상고법원 입법 설득 전략을 짠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4월 작성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안은 다른 현안과 비교불가의 절체절명과제”라며 빅딜을 위한 협상 카드로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를 꼽았다. “법관에 의해 심사, 통제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수사기관에 체포에 관한 상당한 재량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을 상대로 로비를 추진한 정황도 확인됐다. 2015년 6월의 ‘VIP거부권 정국분석’ 문건에는 박 전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에서 각 법사위원들을 설득할 전략이 담겼다. 대법원에 비우호적인 단체에 대한 대응 문건도 있었다.

2014년 작성된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민변대응전략’ 문건 등이다. 이석기 전 의원,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등 주요 사건 선고 뒤에는 언론과 정치권의 동향 파악 문건을 작성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비공개 문건을 공개하며 사태의 진화에 나섰지만 검찰과 사법부의 신경전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이날 다시 법원행정처를 비판했다. 현직 판사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법원행정처가 사건 심리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부산 지역 건설업자의 뇌물수수 재판기록을 검찰이 확보하려는 과정에서다.

검찰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대법원이 열람·등사를 거부했다”고 알렸다.

이에 대법원은 “검사의 재판기록 열람 복사 허가 여부는 해당 재판부의 고유 권한”이라며 “법원행정처가 재판 기록의 열람·등사 신청을 거부했다는 검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손국희·문현경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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