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생명공학 천재여, 당신들 속을 보여 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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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DNA를 가지고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원제: The geneticist who played hoops with my DNA)
데이비드 E 던컨 지음, 김소정 옮김
황금부엉이, 359쪽, 1만3500원

"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법구경의 말은 과학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같은 연구라도 양심적인 과학자가 하면 복이 되고, 일탈한 악당이 저지르면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사실 같은 핵물질이 에너지로도, 폭탄으로도 쓰이는 경우를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은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학 연구의 결과가 생명을 살릴 수도 있지만 지구를 파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도 결국은 인간이기 때문에 일탈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느냐는 소리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연구라면 세상에 주는 영향은 더욱 클 것이다.

미국 과학 저널리스트인 지은이는 생명과학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 일곱 명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본다. 이들이 믿을만한 지, 해오거나 하고 있는 일이 합당한 지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따진다. 일종의 사회적 검증 작업이다. 이 책을 위해 600여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는 그는 과학자들에게 대단히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일례로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인공 미생물을 합성하려는 크레이그 벤터에게 "윤리적 문제는 없느냐" "새로 만든 생명체가 통제에서 벗어나 재앙을 불러올 수 있지 않으냐"고 도발적으로 묻는다. 과학자 세계에서 당연한 것도 일반인에게는 의문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돋보인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은 법정 공방을 연상케 한다. 인간 유전자의 염기 서열을 모두 밝혀낸 '지놈 프로젝트'의 수행자인 벤터와 그의 경쟁자로 주도권 싸움을 치열하게 벌였던 프랜시스 콜린스에게 당시 상황을 묻는 똑같은 질문을 던져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오자 이를 물고 늘어진다.

과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시각도 소개한다. 하버드대의 발생학자 더글러스 맬튼이 에이즈 관련 법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세포와 바이러스의 차이를 물어봤더니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대목은 새겨 들을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이 가장 무게를 둔 것은 과학자들의 인간 됨됨이다. 벤터는 아침에 8km를 뛰었다고 자랑하는 친구에게 "야, 그거 대단한 걸, 나는 위스키를 다섯 잔이나 마셨는데"라고 말하는 등 썰렁한 유머를 즐긴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로 윤리 논란을 일으킨 맬튼이 사실은 부인과 두 아이가 당뇨를 앓게 되자 그 치료법을 찾겠다며 줄기세포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는 사연은 감동적이다. 유전자의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주역의 한 명인 제임스 왓슨은 영혼도, 정신도, 조물주도, 천사도 없다고 믿는 철저한 무신론자.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신이 없다는 증거로 내세운다.

재미난 것은 지은이가 이들 과학자를 신화 속 인물과 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 줄기세포 연구로 윤리논쟁을 부른 맬튼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줬다가 신의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로, 지놈 연구의 상업화 논란에 휩싸인 벤터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로, 확고한 신념의 왓슨은 그리스 신화의 주신 제우스에 대입하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지은이는 이들 성공한 과학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곁에서 지켜보다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르지 않는 열정이었다. 과학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이들의 열정은 참으로 신선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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