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V드라마 『은혜의 땅』 독고빈 역 길용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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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KBS-2TV 주말연속극 『은혜의 땅』은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시대를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한 실천적인 지식인을 만들어냈다.
무고한 한 젊은이를 사형에 이르게 한 고문과 사법제도의 허점에 충격을 받은 김영남은 검사의 직위 뿐 아니라 성과 이름까지 내던져 버린다.
그리하여 육체노동자 독고 빈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는 가진 자들이 만들어낸 질서와 논리가 없는 자들의 불행과 고통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구조를 부단히 고발한다.
올해로 연기생활 14년을 맞는 길용우(32)는 독고빈 역을 맡았다기보다 독고빈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기분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벗어나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진저리나는 어두운 시절을 살아오면서 굳게굳게 닫혀졌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귀공자 같은 차분한 분위기와 야생마처럼 반항적인 도시청년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그는 이번 배역을 통보 받고 커다란 책임감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이 드라마는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의 의도와 힘이 끝까지 유지되는지의 여부가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서울종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굴곡 없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플라스틱공중변소가 있는 시흥2동 산동네 녹화현장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표면적으로는 체념이 지배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 가운데는 뭔가 이루어질 것 같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꿈과 믿음이 끊임없이 느껴져요.』그는 자신이 출연한 『야망의 24시』가 외부압력으로 중단됐던 83년과 대본의 토씨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요즘의 제작여건에서 5공화국과 6공화국의 차이를 실감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한다.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대통령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정도의 윤리가 있는 사회가 돼야 하겠지요.』
틈만 나면 시장에 나가 그곳 사람들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그는 연기자 본연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매년 1편 이상씩의 연극에 출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성실한 연기자다. 부인과의 사이에 5세 된 아들이 있다. <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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