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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 힙합과 누아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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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4호 34면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난 36년 군복 입은 대령/군인 명예 인간 양심 걸고 말해/장관 당신은 기억 못 할 수도 있어/하지만 내 기억 속에 당신은/문제 될 게 없다 똑똑히 말하네’(민병삼 기무사 100부대장).

군에선 힙합, 행정부선 누아르 #장르 서로 뒤바뀐 희극적 현실

‘난 대장도 마치고 장관 하는 사람/국가 위해 정직하게 살아왔네/대령 네 말은 완벽한 거짓말/장관 앞에서 그러면 안 돼/다른 사람 증언이 필요하네’(송영무 국방부 장관).

‘20분간 분명히 보고/문제가 있다고 충분히 말했지/이제 와 당신은 5분이라 하네/기억도 없다 하네/장관 당신 나보다 높은 사람/그래도 난 거짓말 못 해’(이석구 기무사령관).

24일 국회 국방위에서 벌어진 ‘군부 내전’을 랩 가사로 옮겨봤다. 실제 발언 싱크로율 90% 수준이다. 장관·장성·장교가 랩 배틀처럼 치고받았다. 다시 보기 힘든 진기한 장면이다. 힙합 필수 요소인 ‘스웩’(swag·자기 자랑 또는 허세)이 작렬했다. 진심 호소 역시 ‘힙’했다.

그런데 어쩐지 장르가 좀 이상하다. 군은 대표적 누아르 계열이다. ‘디스’와 고백이 넘실대는 힙합이 아니다. ‘조직의 논리’와 ‘패밀리 정신’이 우선이다. 장군이 “다 내 책임이다”고 하면 부하가 “아닙니다. 제가 안고 갑니다”로 답한다. 둘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참는다. 지금껏 본 영화·드라마에선 그랬다. 집단주의 함정에 빠질 수 있지만, 서로에게 목숨을 맡겨야 하는 조직의 특성상 누아르가 제격이다. 보스의 무한 책임, 부하의 의리, 구성원들의 상호 신뢰…. 이게 무너지면 ‘암흑세계’ 형님들도, 군대도 모두 오합지졸이 된다.

군 수뇌부엔 이처럼 힙합 정신이 넘치는데 행정부에선 연일 누아르가 펼쳐진다. 고정 관념 파괴, 이념보다 현실 우선, 개인 실존 존중, 권위 타파…. 이런 긍정적 힙합 정신이 필요하지만 XX파 대원들처럼 행동한다. 혁신, 창조, 발상 전환은 구호일 뿐이다. 조직원(공무원)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면 움직이는 척만 한다. 그러면 보스(대통령)가 나서서 호통친다. “왜 혁신을 제대로 안 합니까?” 그 뒤 일사불란하게 중간 보스(장관), 행동대장(실·국장), 병풍급 조직원(말단 공무원) 순으로 바쁜 일상이 펼쳐진다.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 두목이 조직 혁신을 선언한 영화 ‘두사부일체’는 선지자적이었다.

대통령이 자영업자들을 만났다. 장관·국장이 최소한 반년 전에 해야 했던 일이다. 힙합 정신 충만한 서기관·주무관이 ‘리얼리티’를 먼저 노래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이제 말단 공무원까지 순차적으로 현장 방문 이벤트가 이어질 것이다. 고전적 누아르다.

이런 일도 있다. 반지하와 더불어 한국 양대 힙합 성지인 옥탑방으로 시장이 올라갔다. 불편·소외에 대한 공감을 위해서라고 한다. 힙합에 대한 찬사다. 그런데 시장 부인은 잠깐 들러 사진 찍고 고무신 한 켤레 남겨 놓은 채 집으로 갔다. 애먼 공무원들만 열대야 속에서 잠 못 자고, 보스의 끼니를 위해 땡볕 골목길을 오르내린다. 힙합은 그렇게 또 누아르로 변했다.

구멍 뚫린 청바지 입는다고 꼰대·아재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선거 때 정치인들이 힙합 댄스를 흉내 내고 랩을 부르자 청년들은 ‘웃프다’고 했다. 한밤에 눈 비벼가며 ‘쇼미더머니’ 열심히 봐도 ‘힙’해지기 쉽지 않다. 각자에게 맞는 장르가 있다. 영화 ‘변산’은 누아르적 갈등과 힙합의 외양을 섞어 놓았는데 결국 어정쩡한 퓨전이 돼 흥행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정통 누아르와 리얼 힙합에는 공통점이 있다. 진정성이다. 어설픈 가짜들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그게 감동을 만든다. 군인과 공직자들이여,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소서. 남의 장르 기웃거리지 마시고.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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