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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도와 「괴벨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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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옛날옛적에 「파울·요셈·괴벨스」라는 사람이 독일 땅에 살았다. 독일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고 우월성을 세계에 자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자부하던 사람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절망에 빠져있고 세계적인 경제공황의 여파로 독일사회가 뒤숭숭하던 난세에 「히틀러」라는 지도자를 업고 나치스유의 정의사회를 구현해낸 인물이었다. 그는 근대적 선전광고기술을 창조해낸 천재로서 두고 두고 기록되고 있다.
그는 자기가 목표로 했던 사회의 실현을 위해 6백만명의 유대인이 가스처형장으로 보내지고 수천만명의 목숨이 전쟁으로 사라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천재적인 선전기술과 선동으로 모든 허위를 정당화하며 독일국민을 광란시키며 전쟁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치스독일의 선전상으로서 그가 이러한 「업적」을 쌓기까지는 물론 그렇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시까지 동·서양을 통해 가장 모범적이고 완벽한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라고 일컬어지던 이른바 바이마르헌법을 갖추고 민주주의 사회의 걸음마를 내딛던 독일사회를 반대방향으로 개혁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심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테러리즘·고문·삼청교육대 같은 강제수용소가 파시즘을 지탱하는 효과적·고전적 수단으로서 필요하다는 것 말고도 그는 정보조작이 최상의 무기임을 알고있었다.
육체적인 폭력보다도 더욱 악질적인 폭력, 국민으로부터 눈과 귀를 빼앗는, 국민을 정신의 암실 속에 가두어 두는 언론압살의 효과를 그는 알고 있었다.
그가 선전상으로서 처음 해낸 일은 1백30여개에 이르는 신문들을 판매금지 조치하고 나치스통제에 복종하지 않는 신문은 사실상 모조리 폐간해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독일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미명아래 중국침략의 발판을 마련하던 군국주의 일본에서도 군벌들에 의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2개의 통신사를 하나로 통합하고 전국지를 5개로 제한하며 지방에는 1개현 1개지원칙에 따라 1천수백개에 이르는 신문을 통폐합 해버린 것이다.
50여년 전에 파쇼와 군국주의 일본에서 있었던 것과 똑같은 언론탄압조치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구상하고 실천했다며 그 주역을 자처하는 허문도씨가 최근 국회의 증언에서 당당하게, 그것도 그 부당성을 추궁하는 사람들을 냉소적으로 대하는 해프닝을 우리는 보고 있다.
언론통폐합 조치가 난세의 불가피한 혁명조치로 언론의 체질을 강화해 지금과 같은 민주화 도정을 마련했다는 그의 논리는 50년전 「괴벨스」나 일본군벌의 논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의 발상이 우연인지는 몰라도 나치스와 일본군벌의 발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도 기이하기만 하다. 민족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구상해 냈다는 『국풍 81』이라는 행사는 일찍이 일본의 명치유신시절 극우국수주의자들이 사용한 용어와 똑같은 것이었다. 「화혼양재」라는 『서양문물은 배우되 일본정신(화혼)은 지키자』는 이들 국수주의자의 주장은 그후 일본군벌 발호의 정신적 밑거름 이였다는 평가다.
독일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고 독일정신을 고양시킨다는 소위 「아리안족 우위론」은 유대인학살의 구실을 됐으며 독일나치정신의 바탕이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위해 국풍을 구상하고 언론통폐합을 주도했다는 허씨가 국회증언에서 자신의 공과에 대해 다『역사적 평가를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한 말은 또 「괴벨스」의 신명을 연상시킨다.
「괴벨스」는 돌일이 패전하기 이틀전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에서 『나는 독일 국민의 장래에 최선의 공헌을 했다고 확신한다』고 자랑스레 적고 있다. 또 패전 열흘 전 「히틀러」의 마지막 생일 기념 논문에서 「괴벨스」는 『독일은 위기를 이겨내고 최대의 승리를 축하하게 될 것이다. 역사가는 이 시대를 기록할 때 국민이 지도자를 저버렸다든가 지도자가 국민을 저버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고 자신하고 있다.
허문도씨가 『아직 이르다』고한 독일과 비슷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가는 지금 어떠한가. 당시 「히틀러」를 중심으로 나치스독일을 이끌어 갔던 지도자들은 전력이 사회로부터 소외된 영원한 환경 부적응자, 성격 파탄자, 현실을 광신적으로 경명하는 자, 성적도착자의 군상들로 특징 지워지고 있음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다행히 한국의 경우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이러한 전체주의적 개혁이 실패한 경우로 기록되겠지만 아직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바탕이 완전히 불식되었는지는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세상사람들이 온갖 비리와 파렴치행위의 주역이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행태에서 허씨의 태도와 비슷한 모습을 본다. 신문기자 테러사건, 새세대육영회 사건, 용산 마피아 사건, 또 숱한 국회증언대에 선 인물들 중 자신의 과오를 인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당연한 일을 했고 한점 부끄럼 없이 떳떳하다는 당당한 태도들이다. 다만 잘못은 없어도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잘못이 없으면서 『죄송하다』는 말은 왜할까. 심지어 민주당 창당대회에서 각목을 휘둘러 정치깡패로 지목돼 붙잡힌 용팔이란 사람도 제 일성이 『야당이 분열되는 것을 막고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호송 중 탈주 극을 벌인 탈옥수들도 모두가 『억울하다』는 주장뿐이다. 어느 탈옥수는 붙잡히고 나서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한때 운동선수들이 세계 챔피언이 되고 나서 『각하와 국민에게 감사한다』고 판에 박은 듯 말하던 의식과 상통하는 말이다. 자기 개인의 공과를 생각하기에 앞서 국민이라는 집단에 모든 것을 귀속시키는 획일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위험한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얘기다. 허문도씨 한 사람만이 그렇지 않다는 데에 우리사회의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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