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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이 책은 가벼운 신변잡기식의 글로 보이지만 사실은 교묘하고 은근한 방식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체계화시킨 철학서적 같은 것이다.
우선은 인간과 가장 밀접한 동물인 개(타이오)를 들어 자연과의 친화를 꾀하고 그 거리를 없앤 다음 타이오에 저자가 갖고 있는 모든 감정들을 부여해 새로운 각도로 자연과 대화한다.
타이오의 주인에 대한 애정, 자유에 대한 갈증과 갈등. 암캐에 대한 사랑과 보호심리…. 과대망상자가 아닌 다음에야 아무리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이런 식으로 개를 보려는 사람은 없다.「장·그르니에」에게 타이오는 한 마리의 개로 그친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방 안에서 밖의 숲을 볼 때 거치게 되는 유리창의 역할을 한 것이다. 자연과 저자 사이에서 중간매체가 된 것이다.
타이오의 죽음 앞에서「장·그르니에」는 또 다른 자연과 만나게 된다. 이번에 접하게 되는 자연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지배하는 삶과 죽음을 말하는 것으로서,「장·그르니에」는 『…그러나 살인자는 다름 아닌 자연이다. 바로 자연이 우리에게 첫번째 날과 함께 마지막 날도 선물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가 맞을 수밖에 없는 죽음은 그래서 우리의 삶을 결정지어 주는데 여기서 우리는 흔히 감상에 빠지거나 삶에 대한 소홀한 결론을 얻게되곤 한다. 그러나「장·그르니에」는 죽음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담담하고 긍정적으로 얘기하고 있다.『…어째서 그가 뒤이어 겪은 고통을 생각함으로써 그가 일생 내내 가졌던 기쁨을 부정할 것인가?』 이렇게 죽음 속에서 삶의 기쁨을 짚어나가던「장·그르니에」는「기쁨을 베풀어주고 빼앗아 가는 손」으로서의 자연인 신을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를 종결짓는 것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보고 어떤 자세로 하는지를 말하는 것이다.「자신을 비워내는 사랑」이 바로 그 해답이고 「장·그르니에」가 말하고자 한 것이다.<「장·그르니에 」 작·김정란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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