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처리 단호히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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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그 동안 국회국정감사가 파헤친 대형무정과 불법, 특혜와 인권유린의 의혹들은 경악과 분노를 자아내지 않는 게 없다.
지금까지 폭로되고 제기된 의혹들은 세상에 이미 알려졌거나 의원들이 재탕·삼탕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것이 빙산의 일각이고 전모를 캐면 한정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같은 5공의 비리와 부정, 그리고 공권의 폭력은 따지고 보면 국가 공권력의 무절제한 남용에 기인한다. 국민이 위임한 공권력을 국민과 공전을 위해 소중히 쓰지 않고 극소수 집단의 사익과 정통성 없는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함으로써 빚어진 부산물이다.
이번 국정감사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큰 것은 단순한 부정척결의 차원이 아니라 이처럼 추하고 일그러진 구시대를 정리하고 저질러진 비정을 낱낱이 들추고 단죄함으로써 두 번 다시는 구시대의 악순환을 반복하지 말자는 한결같은 소망 때문이다. 곪은 상처와 묵은 찌꺼기들을 과감히 걷어내 국가경영과 질서를 바로잡고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만들자는 여망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정감사에 주어진 사명이 더없이 그고 제기된 숱한 의혹들을 남김없이 밝히고 응징하는 일은 시대적 요청이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의혹들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지 않거나 뒤처리가 미흡하면 시대의 역항이고 더 많은 의혹과 불신을 자아낼 뿐이다.
이를테면 지하철인사부정과 삼청교육대 사망자, 새세대육영회 기부금 내용 등 감사자료에 나타난 사실을 끄집어내는 것, 위증 또는 증언을 거부한 몇몇 관계자들을 고발하는 것도 좋지만 그 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회감사가 완벽하기 어려운 것은 감사당사자의 비협조와 핵심의 회피, 감사준비의 결여 등에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국회감사권 등의 한계성 때문이다.
수사권이 주어지지 않은 국회감사 기능은 결정적 단서나 증거제시가 없는 이상 어차피 폭로하는 선에서 그칠 뿐 다른 뾰족한 방도가 없다.
요즘 들어 검찰의 수사권 발동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검찰은 지하철공사의 인사부정을 비롯, 국회가 고발한 사건에 검찰권을 발동한다고 밝혔거니와 비단 이것만이 아니고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비리와 의혹은 고발을 기다릴게 아니라 적극 수사에 나서야할 것이다.
검찰의 수사인력으로 보아 제기된 모든 의혹들을 한꺼번에 수사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면 이번 감사에서 크게 부각된 굵직한 비리만이라도 당장 착수해야할 것이다.
김근태씨 고문사건을 비롯한 가혹행위, 부실기업정리에 따른 잡음, 불법 수의계약과 특혜 등에서 드러난 불법에 대해 사법적 처리가 불가피하다.
예컨대 80년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대량 해직사건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협박과 강요로 사유재산을 침해한 불법성이 국정감사를 통해 확인됐기 때문에 검찰권의 발동이 미루어질 아무런 이유나 명분도 없는 것이다.
국회 문공위의 증언에서 허문도씨는 말끝마다 언론통폐합이 『혁명적 상황에서 취해진 조치』라며 상황론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나 상황론이 사태성과 정당성을 결코 추인할 수 없다.
자의에 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만들어 놓은 계약서나 포기각서에 날인한 계약행위는 민법상 당연 무효이며 이 같은 강박과 위협에 의한 강요행위는 협박과 공갈·감금죄 등 형사소추의 대상으로서 의당 수사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범죄행위를 찾아내는 수사기능은 원래 누구의 지시나 명령을 기다릴 것도 없이 자동적으로 발동되고 행사되어야 하는 법이다. 수사권 발동으로 국가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주거나 외교상의 마찰 등 수사로 얻어지는 이익보다 그로 인한 국익의 손실이 현저하다면 몰라도 범죄 있는 곳에 수사는 있어야 한다. 국정감사에서 의혹들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데도 검찰이 남의 일처럼 가만히 보고만 있다면 안될 노릇이다.
수사기관의 수사는 고소·고발에 의해 착수되기도 하나 역시 수사의 본령은 정보나 첩보, 여론과 풍문에 의거해 내사를 하고 요건이 갖춰지면 입건하는 인지수사다. 무소불위로 자행된 5공 비리도 과거 검찰을 비롯한 각급 수사기관이 제구실을 하고 수사공권을 법대로 온당하게 행사해 견제했던들 오늘날 이 지경은 안됐을 것이다. 준 사법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없었던 검찰의 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지난날 직무유기나 다름없는 무기력했던 검찰의 자세에 뼈아픈 자생이 있어야 한다.
기소를 하느냐의 여부는 여론의 흐름과 정치상황 등 고도의 정책적 판단이 뒤따라야겠지만 여론과 풍문에 따라 증거를 수집하고 내사에 이은 수사의 착수는 검찰이 마땅히 해야할 가장 기본이 되는 고유업무다. 헤아릴 수 없이 나열되고 있는 대형 부정과 비리, 인권유린의 의혹들과 뻔뻔스러운 위증사례 등을 규명하기 위해서도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고 척결하는 검찰권의 발동이 시급한 시점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비리수사에 성역은 없다』고 몇 차례 다짐했으며 최근 미국에서 귀국한 후에도 『새시대를 여는 마당에 과거의 비리에 얽매여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대통령의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읽어야한다. 5공의 비리를 하루속히 정리·청산해 민주화에 발을 맞추자면 검찰은 5공과의 단절적 자세로 국감마무리에 진지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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