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 후진타오 자기 색깔 드러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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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온 중국 노동자들이 3월 5일 베이징에서 개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원자바오 총리가 연설하는 장면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원 총리는 업무보고를 통해 "경제 발전에서 소외받은 농촌과 빈곤 지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베이징 AP=본사특약]

지난해 10월 중국 공산당 제16기 5차 중앙위원회전체회의(5中全)가 열렸다. 외국자본과 성장 위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노선에 대한 수정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처음 제기됐다. 올 3월 중국의 국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가 열렸다. 여기서 정책 노선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사실상 결론이 났다.

제4세대 지도부인 후진타오 주석이 집권 3년차를 맞으면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정책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 '신농촌 건설운동'의 본격 추진과 균등.분배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조화사회(和諧社會)론'으로 집약된다.

◆ 매 맞는 '샤오핑'=2년여 전 중국에선 '매 맞는 샤오핑'이라는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국유기업 개혁 때문에 실업자가 된 노동자들이 덩샤오핑을 암시하는 작은 병(샤오핑.小甁)을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니면서 매질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개혁.개방 정책의 부작용으로 빈부(貧富) 격차, 도농(都農) 격차가 커지면서 일부에서 불거진 행동이었다.

2003년 후 주석이 집권한 이후 나온 '과학적 발전관' '사회주의 조화사회' 등은 그런 부작용을 치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도시와 농촌 주민의 소득 격차는 3.1배 정도다. 하지만 체감 격차는 이보다 훨씬 크다. 아직도 배를 곪는 도시빈민과 농민들이 수두룩하지만 취미가 전투기 수집인 거부(巨富)들도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토지수용 불만 등으로 벌어진 시위는 8만 건을 넘는다. 이들의 불평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사회불안은 더 커져 정치 위기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 개방 노선 수정 불가피=후 주석은 3월 전인대에 참가한 지방정부 간부들과 만나 "앞으로도 개혁정책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 노선에 대한 기본적인 지지다. 하지만 그는 "정책의 조화성을 중시해 개혁의 결과가 사회의 여러 분야로 미치도록 해야 하고, 진정으로 다수 인민의 지지를 받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은 이에 따라 그동안 성장에서 소외됐던 농촌 살리기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농촌의 인프라 건설과 교육.의료 부문에 대규모 국가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산업 부문에서는 '시장은 내주고 (외국) 기술을 받는다(市場換技術)'는 덩의 노선에 조정이 가해질 전망이다. 자국 산업과 브랜드의 경쟁력 강화와 이를 위한 외국인 투자기업의 기술 이전 조건이 강화될 움직임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시장만 내주고 저급 상품만 만들어내는 제조공장으로 전락한다"는 자체 우려 때문이다.

◆ 환경정책도 강화=올해 초 중국 정부는 환경을 많이 오염시키는 피혁가공 업체에 대해 관세 환급정책을 전면 철회한다고 밝혔다. 환경문제를 중시하겠다는 신호였다. 지난달에는 예고도 없이 규사(硅砂) 수출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국내 수요가 달러 벌이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국유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도 잇따르고 있다. 민간자본의 진입 장벽을 크게 높임에 따라 주유소와 발전소.탄광을 운영하던 민간 기업들이 고사(枯死) 위기에 처하고 있다.

아울러 중공업과 에너지 부문의 국유기업에 상당기간 독점적인 지위를 유지토록 할 계획이다. 덩샤오핑이 조건 없는 대외 개방으로 고속성장을 이끌었던 데 비해 후진타오의 제4세대 지도부는 사회불만을 해소하면서 내부 잠재력을 키우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일찍이 없었던 실험으로 나라 경영을 잘못할 경우 성장 엔진 자체를 꺼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변화에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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