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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 기회 놓친 미·중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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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언론들은 백악관 환영식에서 벌어진 결례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국(People's Republic of China)을 대만(Republic of China)으로 잘못 소개하고 부시 대통령이 후 주석의 소매를 잡아당긴 것 등은 부주의 때문에 생긴 일이다. 국가주석에게 결례가 된 의전상 실수를 중국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미국의 실수는 후 주석 방미의 격을 '국빈방문'으로 해달라는 중국의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국빈방문.공식방문.실무방문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백악관이 국빈방문을 거부한 것을 두고 부정적 시각이 많다. 초강대국으로 부상 중인 중국 지도자와 우의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더욱 애석한 일은 정상회담에서 주요 현안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언론들은 "후 주석과 부시 대통령은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비꼬았다. 양국 간에는 무역균형, 핵확산 방지, 에너지 문제 등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미.중은 이런 분야에서 상대방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

양국의 무역 불균형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박을 가해온 미 의회의 태도는 혼란만 가중시켰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양국 간 무역분쟁은 불균형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은 쓰는 것보다 더 많이 저축한다. 미국은 반대다. 어느 쪽도 상대방에 강요할 수는 없다. 상생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정상회담에 맞춰 부시 대통령은 미 의회나 국민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다.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한국.대만 같은 아시아 국가들이 생산시설을 대거 중국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라고 설득할 수 있었다. 중국은 미국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 미국은 중국 상품 수입이 늘면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물가가 안정되고 생산비용이 낮아졌다. 미국은 그 대가로 가치가 떨어진 돈(미국 달러화)을 줄 뿐이다.

핵확산 방지 문제에서도 기존의 진부한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중국은 "미국이 테헤란이나 평양과의 대화에서 더욱 유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베이징이 양자에 더욱 단호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다. 이란.북한과의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사태는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이 문제에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유감이다. 미.중은 러시아.일본과 함께 동북아에 핵 보유국가가 출현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을 나라다. 서로 협력한다면 사태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텐데 양국은 적절한 공동대처 방안을 찾는 데 실패했다.

에너지 문제의 돌파구도 찾지 못했다. 미국과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다. 양국은 석유생산 확대, 공급 안정, 수송로 보호, 대체에너지 개발 등에서 같은 목표를 추구한다. 그런데도 고유가 문제에 주요 에너지 소비국들이 함께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미국과 중국은 불확실한 미래에 공동 대응하는 데 필요한 신뢰를 쌓고, 공동의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브루킹스연구소 소장

정리=한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