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저임금 후유증 최소화, 재심의가 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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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년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오늘 정부에 내년도 최저임금 10.9% 인상 결정을 재심의해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한다. 앞서 지난 14일 최저임금이 결정된 뒤 편의점 점주 등 영세 소상공인은 집단휴업 등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된 내년 최저임금에 반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이번 최저임금 안이 영세·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고용 부진을 심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는 것이다.

10.9% 인상 감당하기 어렵고 #고용 부진도 오히려 심화 우려 #현실 인정하고 속도 조절해야

현실을 살펴보면 두 가지 모두 단순한 기우로 볼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하다. 경총은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이의제기서에서 “국내 중소기업 10개 중 4개사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소상공인의 영업이익은 임금 근로자 한 달치 급여의 63.5% 수준에 불과할 만큼 한계상황에 내몰려 있다”고 주장했다. “안 주는 게 아니라 못 주는 것”이라는 취지다.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근로자들이 주로 이런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 밑에서 일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2년간 29%나 오르게 되는 최저임금은 현실 적용 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내년이면 최저임금을 적용받게 되는 근로자 비율이 프랑스(10.6%), 일본(11.8%), 미국(2.7%) 등보다 훨씬 높은 전체의 25%에 달한다는 점도 인상 폭이 우리 경제의 수용 능력을 넘어섰다는 점을 방증한다.

고용에의 영향도 당초 의도와 빗나가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당초 최저임금 인상은 근로자와 가계의 소득을 증가시켜 소비 확대와 경제 활성화로 연결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근 고용 상황은 연 30만 명인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치는 연 10만 명대를 6개월 연속 기록하고 있다. 높아진 임금 부담이 전체 고용을 위축시키고 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 이러면 일자리 확대 없는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취업자와 실업자 사이의 양극화를 부추기게 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후유증을 솔직히 인정하는 대신 시장에 부담을 떠넘기거나 재정을 동원해 이를 무마하려는 데 급급한 인상이다. 자영업자의 카드 수수료율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제로페이’가 대표적이다. 자영업자의 최저임금 부담을 낮춰주겠다며 관 주도로 연간 40조원 규모의 간편결제 시장에 직접 뛰어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 예산 낭비 논란과 민간 기업들이 힘들여 구축해 온 간편결제 시장의 생태계를 흐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아지라는 법은 없다. 최저임금 인상의 좋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현실에 벗어난 정책을 과감히 수정할 필요가 있다. 문제의 본질은 최저임금인데 카드 수수료를 급히 손보는 건 병은 고치지 않고 상처에 밴드를 붙이는 격일 뿐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후유증을 솔직히 인정하고 금액 조정과 업종별 차등 적용 등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