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친노·친문’ 아닌 능력으로 새 대표 뽑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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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한민국이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대통령도 친노(親盧), 국회의장도 친노, 여당 원내대표도 친노, 제1 야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친노다. 이런 마당에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표 예비후보조차 친노·친문 인사가 4명이나 나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 의원, 열린우리당 의원 출신 최재성 의원, 친문계 투사 박범계 의원이 이미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친노·친문 좌장이자 민주당 최다선(7선)인 이해찬 의원까지 출사표를 던졌다. 이 의원은 30년 의원 경력에다 실세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경륜 면에선 따라올 이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보수 궤멸’을 공개 주장해 야당의 격분을 샀고, 정치권의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대통령의 인기가 높은 정권 초반에 여당 대표 후보들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앞세우는 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은 계파 논리만 갖고 여당 대표를 뽑을 때가 아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 요즘 우리 사회에 회자된다. 최악의 취업률에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불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수출마저 내리막이다. 이변이 발생하지 않는 한 새 민주당 대표는 임기 2년 내내 기업·노조·이익단체·야당에 십자포화를 당할 공산이 적지 않다. 이런 힘든 자리를 대통령과의 친분만 갖고 거머쥐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친노·친문계 4명을 포함한 민주당 대표 예비후보 8명은 ‘문’의 ‘ㅁ’자도 꺼내지 말기를 바란다. 대신 침체된 나라 경제를 살릴 전략과 2년 뒤 총선에서 투명한 공천을 실현할 비책에 집중해 정책 대결로 승부해야 한다. 대통령 이름자만 갖고 호가호위하다 정권도, 나라도 결딴낸 뼈아픈 전철을 피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