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V 「인현왕후」 단순한 사실의 전달에 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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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주 막을 내린 M-TV "인현왕후"는 드라마의 사회성과 인기는 별개의 것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지난 83년 3월부터 시작된 "조선왕조 5백년"의 8번째 이야기로 올해 1월부터 방영된 이 작품은 소재 자체가 갖는 탁월한 극적 요소로 인해 시청자들을 시종일관 긴장상태로 몰아넣었다.
거기에 장희빈·장희재와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들의 득세와 몰락의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가 제5공화국 시절 실력자들의 그것과 흡사했다는 점도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는데 한몫을 했다.
이 드라마는 71년 "장희빈" (이서구 작) 82년 "여인열전-장희빈" (임충 작)과 동일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숙종·장희빈·인현왕후라는 세인물의 성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고전적 전형을 탈피했다.
과거의 드라마가 중심 줄거리인 「장희빈의 몰락」을 숙종의 심경변화라는 주관적인 요소로 풀어 나간데 반해 이 작품은 서인 세력의 재등장이라는 역사적 현실과 결부시킴으로써 어느 정도 객관성을 확보했다.
특히 장희빈을 강등하고 인현왕후를 다시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한 갑술 환국의 주체가 서인인 김춘택이며 이를 위해 그가 장희재의 처를 첩으로 삼고 궁인을 매수, 희빈에 대한 정보를 빼냈다는 것도 이 작품이 처음으로 밝혀낸 사실의 하나이다.
아무튼 작가 신봉승 씨는 지금까지 집필한 "조선왕조 5백년"의 8개 작품 중 가장 치밀한 드라마 작법을 이 작품에서 선보였다.
이번 작품이 과거 두 차례처럼 또 다시 시청률 확보에 성공함으로써 "장희빈"도 이제 "심청전"이나 "춘향전"처럼 고전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우선 장희빈의 득세와 몰락으로 무려 46년이라는 숙종 재위기의 정치적 변동을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흥미 위주의 상황 설정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또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이 땅에 살았던 무수한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은 소재 선택의 과정에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되고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왕족·관료 등 봉건왕조시대의 상층 계급만이 등장해 국왕의 여성 편력으로 인한 혼란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우리 역사의 병적인 모습에서 그려냈다. 그리고 숙종이 이성을 회복하자 혼란이 수습됨을 보여줌으로써 국왕이 역사의 절대적인 주재자가 되고있다는 봉건적인 논리를 부단히 내세웠다.
3백년 전의 역사를 여전히 당시의 이데올로기와 시각에서 무비판적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역사의 해석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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