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고시 수석 합격하고도 공무원 포기하고 벤처 투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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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화의 주인공인 이승철(33.사진) 박사는 안정된 직종의 대명사인 고시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모험(벤처)의 길로 나섰다. 서울대 전기전자제어공학부를 나와 모교 대학원 박사 과정에 다니던 중 기술고시를 봐 2000년 12월 통신기술 직렬에 합격했다. 76대 1의 경쟁을 뚫은 합격자 5명 가운데 수석이었다. 이후 학위를 받고 병역특례 기간 5년 동안 임용을 미뤄왔다. 장고 끝에 임용 마감일(4월 10일) 사흘을 앞두고 결심을 했다.

"2003년에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PMP) 전문업체인'맥시안'의 창립멤버로 참여하면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데 벤처가 좀더 나은 무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엔지니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해야 사회에 좀더 기여할 수 있을 지 고민도 많이 했다.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위험 요소가 많더라도 자신의 공학적인 개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더 소중해 보였다. 그럼 애초에 왜 기술고시를 봤을까. "외환위기 이후 공과대학 선배들이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1순위로 퇴출되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당시 공대 재학생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으면서 자연히 기술고시 붐이 일었습니다." 작심하고 공부를 시작한 지 석달 만에 1.2차시험 관문을 내리 뚫었다. 이 박사가 벤처행을 결심하기까지 생각을 가다듬은 과정이 흥미롭다. 그는 젊은 과학기술인들이 자주 들르는 '과학기술인연합' 홈페이지(www.scieng.net)에 지난해 11월부터 자기 번민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댓글 대부분은 "벤처의 길은 험난하니 공무원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행정고시 또는 기술고시를 합격하고 공무원 생활을 하는 선배들에게도 조언도 부탁했다. "의외로 공무원 생활을 긍정적으로 들려주는 선배들이 적더라고요."어쩔 수 없이 지난달 초순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심을 최근 과학기술인연합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이번엔"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격려가 쏟아졌다 .그는 셋톱박스 업체인 휴맥스의 창립 멤버로 연구소장 등을 지낸 김종일 사장의 맥시안에서 과장 직급으로 PMP 및 전용 소프트웨어를 연구하고 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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