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떨어져…갈곳 없어 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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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3일 밤 자수한 김동연은 검찰에서 "도피 도중 내가 계속 자수할 것을 주장한데다 형량도 제일 가벼워 (징역 7년) 다른 사람들이 도피 행각 탄로를 우려해 나를 따돌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어 자수키로 결심했다" 고 말했다.
김은 그동안 탈주 범 일행과 함께 고대·한양대 캠퍼스에서 대학생 행세를 해 수색망을 피해 다녔으며 12일 새벽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보며 자수를 결심할 즈음 밖에 있던 다른 탈주 범들이 따돌릴 계획을 세웠으며 "남산도서관 앞에서 만나자" 고 헤어진 후 일행들과 흩어지게 됐다는 것.
◇ 자수 결심 = 김은 12일 오전6시쯤 나머지 일당과 함껜 행당동 박씨 집에서 나와 2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곧바로 명동성당으로 갔다.
천주교 신자인 김은 새벽미사를 보러 성당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6명은 성당구내 벤치에 앉아 기다리다 오전 8시쯤 다시 모여 두목 격인 지강헌의 지시로 한시간 뒤 남산도서관 앞 벤치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이에 따라 김은 오전 8시30분쯤 함께 있던 한의철과 함께 택시를 타고 약속장소로 가 10여분 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후 함께 있던 한마저 "찾으러 가보겠다"며 힐튼호텔 쪽으로 사라진 뒤 돌아오지 않자 불안해진 김은 자살할 것을 결심, 즉시 택시를 타고 왕십리에 있는 중앙시장으로 가 물약 2병과 가루 1봉지가 든 쥐약을 샀다.
◇ 여관 투숙 = 김은 택시로 석관동쪽으로 가다 신이문 역 근처에 있는 연탄공장 부근에 내려 김종구 수사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수할 경우 형량이 얼마나 추가되느냐" 고 물었으나 김 부장이 2년쯤 추가된다고 하자 구멍가게에서 소주 1병을 사 가지고 오후 3시쯤 도봉산 기슭으로 갔으나 약을 먹지는 않았다.
김은 산을 내려와 이날 오후 5시쯤 평소 지리에 밝고 투숙객이 적은 미아3동 214의 77 동원장 여관 (주인 안복윤·60) 206호로 들어갔다.
김은 숙박부에 서울 월곡동 97의41에 사는 이상욱·54년 10월27일 생이라고 가명을 사용했다.
◇ 자수 전화 = 김은 13일 오후 3시쯤 여관 밖에서 공중전화로 김종구 수사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수할 뜻을 밝힌 뒤 한시간만에 여관으로 돌아왔다.
김은 이어 오후 8시쯤 자신의 고향 (전남 나주) 친구인 박종복씨(32·회사원·서울 창신동) 집에 전화를 걸어 "이미 각오가 돼있다"며 여관으로 오게 한 뒤 박씨와 함께 자수방법을 상의했다. 친구 박씨가 "빠를수록 좋다"며 "용기가 안 나면 아는 경찰관이 있으니 그를 통해 자수하라" 고 즉시 자수할 것을 권유하자 수사본부에 전화를 걸어 자수하겠다고 밝혔다는 것.
박씨에 따르면 김은 방안에 있는 TV를 통해 9시 뉴스를 보다 자신의 작은누나와 큰형이 자수 권유하는 것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리며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김은 여관에 있으면서 부모와, 인질극을 벌였던 손·박씨 가족 등에게 사죄하며 자신의 탈주 동기를 밝히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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