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해진 개헌론이 후반기 국회 시작과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17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올해 연말까지 여야가 합의된 개헌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헌 논의는 블랙홀”이라며 논의를 피하는 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민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바른미래당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이루는 가장 큰 장애가 바로 민주당”이라며 “지금 민주당의 태도는, 민주주의 근본원칙을 지켜내라는 촛불 시민혁명의 뜻을 배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이라고 말했다. 신보라 한국당 대변인도 이날 논평을 통해 “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과 문 의장까지 나서 연내개헌을 요구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개헌에 일말의 진정성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 개헌논의에 나설 때“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은 미지근하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전날 “개헌 논의는 해야 하겠다”면서도 “작년부터 국회가 합의도 이뤄내지 못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것도 제대로 법적 절차도 지키지 않고 폐기한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병원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8일 “경제와 민생에 대한 입법들이 굉장히 중요해지고 있는 시기에 개헌 문제는 경제민생 입법들을 외면하는 하나의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전까지는 개헌을 놓고 한국당을 압박했다.
여야의 공수가 바뀐 건 개헌과 패키지로 논의되고 있는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이 깊다. 문 의장도 18일 “선거제도 개편이 따르지 않는 개헌의 의미가 없다”며 “득표수에 비례하는 원칙(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국민이 동의한다”고 밝혔다. 당초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편에 소극적이었다. 각 지역구에서 1위 득표자만 당선되는 현행 소선구제를 유지하는 게 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가진 한국당에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지방선거 후 이같은 셈법에 변화가 생겼다. 서울시의회(전체 의석 110석)만 놓고 봐도 그렇다. 민주당은 50.9%의 표를 얻었지만 102석을 확보해 전체 의석의 90%를 차지했다. 반면 한국당은 25.2%의 표를 받았지만 6석(5.5%)의 의석만 건졌다. 한국당의 거점이었던 부산시의회에서도 한국당은 36.7%의 득표를 얻었지만, 의석은 6석(12.8%)만 얻었다. 바른미래당ㆍ민주평화당ㆍ정의당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 때문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8일 라디오에서 “지방선거를 통해서도 왜 선거구제가 꼭 개편돼야 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며 “민주당이 전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기는 했지만, 전체 지지율의 50%를 얻고 시도의회의 90%의 의석을 차지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흐름이 2020년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성적표는 더 절망적이다. 중앙선데이가 지난 23일 지방선거 득표율을 기준으로 총선에 적용한 결과 300석 중 더불어민주당(228석), 한국당(50석), 정의당(5석), 바른미래당(4석), 민주평화당(3석), 무소속(10석) 등이었다. 한국당은 지난 총선 때 얻은 122석에 비해 의석이 72석이나 줄어든다. 바른미래당(30석)도 비례대표로만 4석을 간신히 건지고 지역구 의원 당선자는 전무하다.
야당 입장에서는 각 정당의 전체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눠 갖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원할 수밖에 없다. 반면 민주당은 현행 소선구제를 유지하는 게 유리한 상황이다. 바른미래당 한 의원은 “현재 기준으로 하면 야권은 미래가 없지만,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지면 어느 정도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개헌ㆍ선거제도 개편을 위해 야권이 얼마만큼 뭉칠지는 미지수다. 당장 지난 7월 초 김성태 원내대표가 주도했던 개헌 연대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으로 퇴짜를 맞았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던 바른미래당도 ‘개헌연대’, ‘개혁입법연대’ 등에 대해 ‘편가르기’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