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금기 깬 통일각 협상…"미군, 北 노림수에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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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전사한 미군 유해 송환의 세부 일정 등을 협의하기 위한 북·미 실무회담이 16일 판문점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미군 차량이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를 지나 판문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6·25전쟁 때 전사한 미군 유해 송환의 세부 일정 등을 협의하기 위한 북·미 실무회담이 16일 판문점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미군 차량이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를 지나 판문점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미국이 북한과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을 협상하면서 전례를 깨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가 북측 땅을 밟았다.
북ㆍ미 군사 접촉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16일 북ㆍ미 실무 회담엔 미측에서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인 버크 해밀턴 대령이 나와 통일각에서 북측과 접촉했다. 전날인 15일 북ㆍ미 장성급회담엔 유엔군사령부 소속으로 마이클 미니한 주한미군 참모장이 나왔다고 한다. 역시 회담 장소는 통일각이었다. 통일각은 판문점내 북측 지역이다. 남북을 가르는 MDL을 넘어선 지역이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이후 미군이 북한을 만나온 회의장소는 판문점 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이다. 정전 직후인 1953년 10월 세워진 이 회의실은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로 이뤄져 있다. 두 회의실 모두 정전협정의 관리 주체인 유엔사가 관할한다. 유엔사의 대표 격인 미군이 정전체제의 틀 안에서 북한군과 접촉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MDL이 이들 군정위 사무실 정중앙을 가로지른다.

남북 장성급회담 회담장소인 판문점 북측지역의 통일각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장성급회담 회담장소인 판문점 북측지역의 통일각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미군은 이번엔 정전협정 이후 사실상의 금기였던 MDL을 연이틀 넘어갔다. 남북 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예비역 준장)은 “1976년 북한군이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도끼 만행 사건’으로 MDL이 그어진 뒤 미군이 MDL을 넘어 북한군과 회담을 한 건 이번 유해송환 회담이 유일하다”며 “정전협정이 유효한 이상 미군은 유엔사와 정전위 회의장 밖에서 북한군과 접촉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의 소식통도 “40여년간 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내 기억에 미군 장성이 MDL을 넘어가 북한 측과 접촉했던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북측 지역에서 열리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진 데 대해 일각에선 미국이 북ㆍ미 접촉의 의제를 유해송환으로 국한하기 위해서 정전체제를 상징하는 군정위 회의실이 아닌 북측 통일각을 이용했다는 시각이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을 공식 논의하는게 아니라는 점을 안팎에 보여주기 위해 군정위 회의실을 피했다는 해석이다.

반면 북한의 치밀한 선전술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간 북한의 의도는 정전체제의 무력화였다. 하지만 미군이 대화 채널을 유엔사로 한정해 북한은 미군과 군사회담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군정위 회의장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번엔 북한이 미군을 군정위 회의장 바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게 됐다. 북ㆍ미는 당초 지난 12일 T2 또는 T3에서 회담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한은 당일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은 채 15일로 회담 날짜를 연기했다. 그 뒤 15일 회담은 통일각에서 열렸다.

문 센터장은 “통일각 회담은 북한이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자신들 앞마당에서 미국과 단독 군사 채널의 선례를 남긴 북한이 종전선언, 주한미군 철수, 한ㆍ미 연합훈련 폐지를 차례대로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북ㆍ미 협상에 밝은 전직 정부 당국자도 “미국 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6ㆍ12 북ㆍ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며 “미국은 유해송환을 위해 회담 장소에 담긴 북한의 노림수를 평가절하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통일각 회담이 당장 종전선언을 둘러싼 협상 주도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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