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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희생당해 왔던 여성들의 피맺힌 한|대변자 역 제대로 해낼지 걱정태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성폭력으로 희생당해 왔던 모든 여성들의 피맺힌 한을 얼마나 대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가정파괴 범이 휘두른 성폭력 앞에 너무 쉽게 굴복해 가는 가족들의 이기주의를 그린 연극『덫에 걸린 집』(9∼17일·호암아트홀)에서 주인공을 맡은 연극배우 김순이씨(32)는『연극배우 8년 동안 이처럼 절실하게 내 문제로 여겨진 것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남편이 보는 앞에서 침입한 강도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는 불운한 아내가 그의 역. 거듭되는 가족들의 냉대와 남편의 방관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이혼서류를 집어던진 채 집을 나서는 현대판「노라」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동안 지상에 오르내리는 성폭행기사가 강간을 의미하는지도 몰랐을 장도로「까막통」이었던 그는 지난 9월 연습에 들어가면서부터 남편(MBC PD 김수용씨)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울 때면 창문을 닫고도 모자라 방문까지 잠그고 잘 정도로 변해버렸다.
「암울한, 그러면서도 촉촉한」분위기 있는 목소리 때문에 지적인 여성역을 단골로 맡고 있는 그는 이번 공연에도 상처받은 자존심을 추스리려는 이지적 여성상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계성여고 시절 무대에 선 것이 계기가 돼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 76년 실험극장 단원이 됐던 그는 자녀 출산으로 인한 5년 간의 공백을 딛고 84년부터 무소속으로 맹렬한 활동을 재개, 금년『숲 속의 방』으로 동아연극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함으로써 그의 위치를 확고히 굳혔다.
『평상시는 보통사람과 같다가도 일단 무대에 오르면 완벽한 배우가 되는 것이 진짜 배우』로 믿고 있는데 『남편의 외조보다 7살·5살 두 꼬마가 엄마의 활동을 눈감아주는 게 원동력』이라며 대견해 한다.
여성 희곡작가 정복근씨가 대본을 쓴 이 작품은 정씨와 연출가 임영웅씨가 팀을 이뤄 공연해온 5번째의 가정문제 시리즈로 오늘의 부부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고 김씨는 말한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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