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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환생하면 연구하겠다는 그 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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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호 30면

2018년에 다시 꺼낸 유대 경전 ‘탈무드’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
마이클 카츠·거숀 슈워츠 지음
주원규 옮김, 바다출판사

1000만 단어, 38권 방대한 분량 #한국에 소개된 건 극히 일부일 뿐 #원전의 핵심 가르침 새롭게 조명 #쥐 잡는 방법까지 나와 #결론보다 대화·토론의 가치 제시 #소소하나 확실한 행복의 길 담아 #페미니스트는 어떻게 바라볼까 #한풀 벗겨본 남성 중심의 옛 경전 #남녀 구분 뛰어넘는 지혜의 바다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일라나 쿠르샨 지음
공경희 옮김, 살림

누군가 아인슈타인(1879~1955)에게 물었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답했다. “『탈무드』를 연구하겠습니다.”

탈무드란 무엇일까.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나온다. “유대인 율법학자의 구전과 해설을 집대성한 책. 사회 전반의 사상(事象)에 대한 것으로, 이스라엘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있는데, 보통 후자(後者)를 이른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의 정신문화 원천으로써 높이 평가된다.”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인 예디오트 아하로트는 “한국인들은 왜 『탈무드』를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2011년 5월 12일)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한국에는 불교·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많지만, 집집이 탈무드가 한 권쯤 있다. 이스라엘 사람보다 더 많은 한국인이 『탈무드』를 읽고 있다.

‘먼 나라 한국에서도 『탈무드』를 읽는데 이스라엘에서는 과연?’을 묻는 이 기사에 나오는 『탈무드』는 ‘진짜’ 탈무드가 아니라, 일본에서 활동한 마빈 토케이어(82)가 쓴 『탈무드의 지혜』 『탈무드의 처세술』 『탈무드의 웃음』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진짜’ 『탈무드』는 한 권이 아니라 1000만 단어, 38권 분량이다.

오스트리아 화가 카를 슐라이허(1825~1903)가 그린 ‘유대인 풍경 II’. 전 세계 1400만 유대인들이 수월성을 자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 탈무드를 빠트릴 수 없다. 탈무드는 소위 제4차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 시대에도 깊은 영감을 선사 하며 살아남을 책이다. [사진 햄펄 옥션]

오스트리아 화가 카를 슐라이허(1825~1903)가 그린 ‘유대인 풍경 II’. 전 세계 1400만 유대인들이 수월성을 자랑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 탈무드를 빠트릴 수 없다. 탈무드는 소위 제4차산업혁명 시대, 인공지능(A) 시대에도 깊은 영감을 선사 하며 살아남을 책이다. [사진 햄펄 옥션]

『탈무드』에는 쥐 잡는 법, ‘내가 소유한 낙타가 상점을 밝히는 촛불을 건드려 상점에 불이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와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탈무드』는 대체로 따분한 책이다. 수면제보다 더 강력한 수면제일 수도 있다. 『탈무드』 종주국 이스라엘에서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탈무드』 관련 과목이다. 그런 책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유대인들도 꽤 많다. 한동안 잊힌 책이었다.

『탈무드』가 부활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깔 수 있는 ‘탈무드 앱’도 한몫한다. 1970년대 한국에서 토케이어가 촉발한 『탈무드』 돌풍이 재현될 수 있을까.

최근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와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가 출간됐다.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의 원제는 ‘탈무드의 바다에서 수영하기(Swimming in the Sea of Talmud)’다.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의 원제는 ‘만약 모든 바다가 잉크라면(If All the Seas Were Ink)’이다.(11세기 랍비 메이르 바르 이츠하크의 시에서 따온 제목이다. 이런 내용의 시다. 하늘을 양피지로, 바다를 잉크로 삼아 글을 써도 신(神)의 영원한 영광을 충분히 다 표현할 길이 없다.) 두 책 다 원제에 ‘바다(sea)’가 들어간다. 『탈무드』라는 지식·지혜의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

바다는 매서울 수도 잔잔할 수도 있다. 물에 들어가려면, 물에 대한 공포를 없애야 한다. 조금씩 물과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탈무드』에 대해서는 ‘『탈무드』 개론서’라 할 수 있는 『원전에 가장 가까운 탈무드』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책은 『탈무드』 읽기에 필요한 핵심 지식을 전달한다. 『탈무드』의 역사·문체·사고방식·맥락 등을 풀이하고 『탈무드』에서 90개 ‘맛보기’ 텍스트를 뽑아내 해설한다. 그런 다음에는 21세기의 삶에 『탈무드』를 적용하는 법을 제시한다. “남을 선행으로 이끄는 사람이 선행하는 사람보다 위대하다” 같은 좋은 말도 많이 나오는 책.

그리스도교가 바라본 율법과 유대교가 바라본 율법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예수가 인류를 율법으로부터 해방했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율법은 극복의 대상이다. 하지만 유대교는 율법이 사람을 절대 옥죄지 않는다고 본다. 율법에는 오히려 사람들을 보다 자유롭고 편안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탈무드』 덕분이다. 『탈무드』는 율법을 둘러싼 랍비들의 개방형 논쟁·토론·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

1923년 메이르 샤피로라는 폴란드 랍비가 ‘다프 요미(하루에 『탈무드』 한 장 읽기)’ 운동을 제창했다. 하루 한 장이면, 다 읽는 데 7년 반 걸린다. 다프 요미를 실천한 유명 유대인 중에는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의 저자 일라나 쿠르샨이 있다. 하버드대(과학사 학사)와 케임브리지대(영문학 석사)에서 공부한 쿠르샨은 초년 고생이 심했다. 학창 시절에는 거식증으로 고생했다. 첫 남편을 따라 이스라엘로 이주했는데 결혼은 1년 만에 파경으로 끝났다.

‘다프 요미’가 그를 구원했다. 『탈무드』를 매일 읽다 보니 좋은 일이 끊이지 않았다. 좋은 사람을 새로 만나 결혼했고 자식 넷을 얻었다. 7년 반에 걸친 『탈무드』 읽기를 블로그에 연재했다. 올렸던 글을 ‘자서전 형식의 『탈무드』 개론’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은 끝났고 여자는 탈무드를 들었다』로 펴냈더니 각종 상을 휩쓰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이 책은 20~30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에 대한 『탈무드』식 해법을 담았다. 문체가 서정적이다. 저자의 박식함을 밉지 않게 뽐내는 책이기도 하다. 일상 속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이야기도 풍성하게 나온다.

쿠르샨은 확고한(staunch) 페미니스트다. 그런데 『탈무드』는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책이다. 지금도 일부 극보수 유대교 종파는 『탈무드』를 여성에게 권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쿠르샨은 『탈무드』에서 인생의 지혜를 뽑아내기 위해 읽기 시작했다.

번역가·편집자이기도 한 쿠르샨은 매우 흥미로운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탈무드』 기준으로 보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운전하지 않는다. 운전하면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 한시도 책에서 떨어질 수 없는 활자중독자다. 예외는 수영할 때인데 그는 물 속에서 머릿속으로 시(詩)를 왼다. 쿠르샨은 고등학교 다닐 때 수학에 대한 시를 썼다. 그 시는 수학교사들을 위한 잡지에 실렸다.

저자는 『탈무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탈무드』는 해답을 찾은 사람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텍스트다.” 그의 이 말에서 『탈무드』를 그리스도교 『성경』이나 불경, 『원불교교전』으로 바꿔도 될 것 같다. 세월이 검증한 경전에는 힘이 있다. ‘하루에 불경 한 장 읽기’ ‘하루에 사서삼경 한 장 읽기’ ‘하루에 성경 한 장 읽기’ 운동도 가능하다. 쿠르샨의 경우처럼, 놀라운 좋은 일들이 그런 운동을 하는 독자들을 찾아가지 않을까.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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