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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순 <경제부장>|흑자 올림픽의 허와 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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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올림픽을 결산하면서 당국이 크게 자랑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이번 대회가「흑자올림픽」이었다는 점인 것 같다. 박세직 대회조직위원장도 올림픽이 끝난 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2천5백20억원의 흑자를 냈다는 중간결산을 몇 차례 강조했다.
큰 일을 치르고 나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는 것보다야 돈을 오히려 남겼다는 것이 반갑고 듣기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더우기 72년 뮌헨올림픽이나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이두도시가 올림픽 때 진 빚을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올림픽이 뮌헨이나 몬트리올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적지 않게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부에서 올림픽 개최를 반대하는 명분으로 적자올림픽에 대한 우려를 내세웠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박위원장이 대회 후 첫 기자회견에서 흑자올림픽이었음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이 같은 당국의 태도에 접하면서 과연 저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과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우선 의심스러운 것은 서울대회가 과연 흑자대회였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위원장의 설명을 들으면 이번 올림픽을 통해 8천4백10억원의 수입을 올린데 비해 지출총액은 5천8백90억원에 그쳤다는 것이다.
당초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세워놓은 수지계획에 따르면 수입은 TV방영권 3천8백38억원을 비롯, 아파트 분양수입, 휘장사업, 주화발행, 복권판매 광고, 입장권판매수입, 성금, 기념우표판매수입, 입촌비 등을 합해 7천4백77억원이 계상됐고 지출은 경기운영·시설비·선수촌운영비 등을 합해 역시 7천4백77억원이 되어 균형을 맞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회를 치르면서 수입은 아파트분양사업이 부동산 투기 붐의 덕으로 기부액이 많아져 당초 예상했던 5백68억원의 4배가 넘는 2천5백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등 계획치를 훨씬 웃돈 반면 지출 폭에서는 경기용 기구의 무상 기증 등으로 지출요인이 대폭 줄어 흑자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올림픽조직위원회의 자금수지만을 따진다면 이 같은 계산은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직위원회의 자금출납부가 혹자를 나타냈다고 해서 이번 올림픽 자체를 흑자올림픽이라고 규정할 수 있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조직위원회의 지출항목에 들어있지 않은 씀씀이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15일간이나 전국을 누빈 성화봉송으로 각지방자치단체가 쓴 돈이 엄청났다.
일부 지방에서는 성화봉송행사에 따른 지출 때문에 계획했던 지방사업을 미루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체육단체장을 맡고있는 대기업들이 쏨아 부은 돈도 수지계산에 넣어야 할 항목이다. 지출항목에 당연히 들어있어야 할 것들이 조직위원회의수지계산에는 빠져있다는 얘기다.
수입이 당초 계획보다 늘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별 의미가 없는 소리다.
부동산투기 붐으로 아파트값이 올라 올림픽조직위원회의 수입은 늘었을지 몰라도 그 부담은 결국 국민의 한사람 한사람인 입주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휘장사업·우표판매사업 등 모든 수익사업이 마찬가지다. 그래놓고 흑자올림픽이다, 혹은 적자올림픽이 다를 논하는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뮌헨이나 몬트리올 올림픽은 적자대회고 서울올림픽은 흑자대회라고 자랑하지만 그 차이는 뮌헨이니 몬트리올 시민들이 올림픽의 부담을 오랜 시간에 걸쳐 나누어 치르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한꺼번에 치렀다는 것뿐이다.
서울올림픽이 적자냐 흑자냐를 제대로 따지자면 이번 행사를 위해 우리가 소비한 물자와 이번 행사에 외국인들이 뿌리고 간 돈이 얼마냐를 계산해 보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렇다고 지금 그런 식으로 서울올림픽의 수지를 가늠해 보자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올림픽을 치른 것이 돈을 벌자고 한 노릇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올림픽이 함축하고 있는 뜻과 그것이 우리 국민에게 주는 의의는 돈을 몇 푼 남기고 안 남기고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서울올림픽은 이제까지 세계무대에서 외면당하거나 잘못인식 돼왔던 우리의 존재와 잠재력을 뚜렷이 부각시키고 우리의 위치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엄청난 작업이었다 할 수 있다. 이번 행사가 앞으로 우리의 진로에 미칠 파급영향은 돈으로 계량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하면서 그 성과를 작은 수판으로 따지려 한다는 발상자체가 잘못된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울 올림픽에 걸 맞는 대차대조표를 제대로 만들려고 한다면 대회경비에서 얼마를 남겼느냐를 따지는 일보다는 올림픽의 성공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측면을 점검하는 일이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손익계산서 상에 이번 올림픽이 우리에게 엄청난 플러스효과를 가져올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반드시 음지가 있는 법이고 좋은 일의 뒤에는 뜻밖의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번 올림픽의 성공으로 우리의 국제사회에서의 지위가 올라간 것은 틀림없지만 그에 따라 선진국의견제가 심해지고 개방압력이 가중되리라는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소련·중국·동구권과의 거리가 급속히 가까워진 것은 바람직한 일일지 모르지만 반면에 오랜 맹방이며 가장 큰 시장인 미국과의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인지도 신중히 검토해 볼 문제다.
이런 문제들을 종합해서 대차대조표를 만들었을 때 비로소 서울올림픽의 흑자·적자여부와 그 크기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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