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친서 공개···궁지 몰린 트럼프가 악수 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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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고육지책 김정은 친서 공개, 약될까 독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친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례적인 '친서 공개'가 약이 될 것인가, 독이 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공개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두고 워싱턴에서 두 가지 상이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백악관이 주장하는 '미국과 북한의 신뢰 재확인'이다.

트럼프, '새로운 미래' '획기적 진전' 표현 들며 "멋진 편지" #미 언론, "'비핵화' 전혀 언급 안했다"며 비핵화 의지 의심 #빅터 차, "결국 '본질(비핵화)'이 어디로 갔느냐가 문제"

백악관 측은 김정은 위원장이 편지에서 한글본에선 '각하'라는 표현을 6번, 영문본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H.E.(His Excellency)와 'Your Exellency' 표현을 총 6번 썼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미국에 높은 신뢰를 보였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벨기에 브뤼셀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영국으로 출발한 뒤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아주 멋진 편지. 아주 위대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 후속 고위급 회담이 가시적 성과없이 마무리 되면서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회의론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합중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 각하'라는 제목의 친서에서 "친애하는 대통령 각하, 24일 전 싱가포르에서 있은 각하와의 뜻깊은 첫 상봉과 우리가 함께 서명한 공동성명은 참으로 의의깊은 려정의 시작으로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두 나라의 관계 개선과 공동성명의 충실한 리행을 위하여 기울이고 있는 대통령 각하의 열정적이며 남다른 노력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두 발언 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지난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두 발언 후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그러면서 "조미 사이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려는 나와 대통령 각하의 확고한 의지와 진지한 노력, 독특한 방식은 반드시 훌륭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며 "대통령 각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과 신뢰가 앞으로의 실천과정에 더욱 공고해지기를 바라며 조미관계 개선의 획기적인 진전이 우리들의 다음번 상봉을 앞당겨주리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다음번 상봉'이란 표현은 김 위원장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추가 정상회담의 조기 성사에 대한 희망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실천과정'을 거론한 것은 북한이 주장해 온 '단계적, 동시적 행동', 즉 종전선언을 비롯한 체제보장을 미국 측이 신속히 보여줄 것을 촉구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폼페이오가 환상적인 일을 해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처럼 트럼프 행정부로선 '새로운 미래'와 '획기적 진전'을 언급한 김 위원장의 발언을 직접 소개함으로써 지지부진한 비핵화 후속 협상을 다시 본 궤도에 올려놓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궁지에 몰린 트럼프가 악수(惡手)를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김 위원장의 친서에 '비핵화(denuclearization)'란 단어가 단 한번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원하는 관계 개선과 추가 회담만 밝혔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는 거론조차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핀 나랑 미 MIT 교수는 CNN에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첨하면서도 단 한 번도 ‘비핵화’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며 "김 위원장의 뜻은 간단하다. 북·미 관계가 진전된 다음에나 핵 무기에 대해 얘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친서는 꾸밈이 심한 언어로 가득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포기 의도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도 "김 위원장 친서에는 정작 북한이 비핵화를 향해 어떠한 조치를 하겠다는 언급이 전혀 없음에도 (트럼프)대통령은 '아주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꼬집었다.

지난 5월 10일 마이크 폼페이오 ㅁ국 국무장관의 2차 방북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 6알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때는 면담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 5월 10일 마이크 폼페이오 ㅁ국 국무장관의 2차 방북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모습.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 6알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때는 면담에 응하지 않았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워싱턴포스트에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들(두 정상)이 개인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구축했다는 점이겠지만, 결국 '본질'은 어디로 갔느냐가 문제"라며 "그런 편지를 공개한다고 해서 폼페이오의 3차 방북에 뭔가 더 있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멋진 편지'라고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놓고 워싱턴에선 회의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김 위원장 친서 공개가 당초 의도와는 달리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워싱턴 조야의 기존 우려를 더욱 심화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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