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천년 묵은 때가 국보인 것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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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마당에 들어서던 이영욱 전주대 교수가 한마디 했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장 일을 보느라 3년여 전주를 떠나있던 그는 오랜만에 들른 금산사의 변한 풍경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세월이 만든 때가 아름다워야 할 몇몇 석물이 말갛게 닦여 옛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산문이 열리고 신라 혜공왕 2년(766)에 새롭게 고친 뒤 고려 문종 33년(1079)에 혜덕왕사가 크게 일군 유서 깊은 고찰이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군이 불을 질러 장엄했던 80여 동 건물과 40여 암자가 한 줌 재가 된 슬픈 역사를 지녔다. 인조 13년(1635)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으나 본디 규모의 삼분의 일도 못 미친다니 얼마나 장한 절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긴 내력 덕인지 금산사는 국보와 보물 많은 절로 꼽힌다. 국보 제62호인 미륵전을 비롯해 보물 제23호 석련대, 제26호 방등계단 제27호 육각다층 석탑, 제28호 석등 등 문화재가 널려 있다. 특히 불에 타지 않은 석조 보물이 곳곳에 서 있어 웅장하고 화려했던 과거 모습을 알려준다. 천 년 사적의 호흡이 이 석물들에 살아 숨쉬는 것이다.

이런 석물들이 지난해 여름 일종의 수난을 겪었다. 돌에 낀 해묵은 이끼를 물 세척으로 벗겨내 천 년 세월의 흔적이 날아가버렸다. 이영욱 교수가 절이 환해졌다고 느낀 까닭이다. 최근 전국의 절을 순례하고 있는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금산사의 석조보물들을 둘러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시푸루둥둥하게 변한 석물은 이미 역사의 흔적을 잃고 있었다.

금산사 측은 이끼류가 너무 많이 퍼져 석물에 균열이 가지 않도록 한 조처였다고 했다. 절과 김제시가 문화재 관리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문화재청은 각 사찰로부터 '문화재 특구 보존사업' 신청을 받아 이끼나 오염물질을 벗겨내는 작업을 전문가 자문으로 시행하도록 허가했다고 밝혔다.

금산사뿐이 아니다. 최완수 실장은 지난 1~2년 새 개선사지 석당, 쌍봉사 철감선사부도 등 때를 잘못 벗겨 이상해진 사찰 문화재를 보고 "세월이 아니고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돈독으로 걷어내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고 통탄했다. 문화재청 지도로 각 사찰이 실시한 복원 작업이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과학지식으로 독이 된 셈이다.

'원형을 손상하지 말아야 한다'는 문화재 보존의 기본 원칙을 가장 잘 알고 지켜야 할 문화재청과 절집이 제 살을 벗겨낸 현장이다.

김제=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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