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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늘린다” 6%뿐 … 출구 막힌 고용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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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경제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경제의 바로미터인 고용지표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수준에 근접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세계 무역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내수마저 차갑게 식어 가고 있다.

제조업 부진에 최저임금 겹쳐 #취업자 증가 10년 만에 최저 #“무역전쟁·52시간제 등 악재 쌓여” #정부, 생산인구 감소 탓으로 돌려

11일 통계청의 ‘6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 보다 10만6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취업자 증가 폭이 5개월 연속 10만 명대 이하에 머무른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실업자 수도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 100만 명을 넘었다.

여기에는 제조업 침체와 같은 한국 경제가 맞닥뜨린 구조적 문제점이 녹아 있다. 국내 산업의 뿌리인 제조업의 취업자는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올해 4월 6만8000명에서 지난달 12만6000명으로 감소 폭이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를 받는 도매 및 소매업, 음식점업, 부동산 경기 부진에 영향을 받은 임대서비스업·부동산업, 학령기 인구 감소로 위축되고 있는 ‘학원 등 교육서비스업’에서도 취업자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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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추세면 올해 고용 전망을 수정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 규모를 월 32만 명으로 예상했지만 상반기까지 월평균 취업자는 14만2000명에 그쳤다. 2009년 하반기 이후 최저로, 지난해 증가 폭(31만60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부진한 데다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당분간 고용상황 개선은 힘들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앞으로의 걱정은 고용 부진이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수출마저 내리막을 걸으면서 내수·수출·고용 모두 늪에 빠지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상의가 220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고용 확대 등과 관련해 34.9%는 ‘별다른 대응이 없다’고 응답했다. ‘신규 채용 확대’를 밝힌 곳은 6%에 불과했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됐지만 이것이 전 사회적 일자리 나누기로 퍼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5월 소매판매액은 두 달째, 설비투자는 3개월째 각각 감소하는 등 다른 경제지표에도 ‘노란불’이 켜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의 내수 증가세가 약화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경기 개선 추이가 완만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나마 믿을 구석이던 수출에서도 경고음이 들린다. 수출 증가세가 4·6월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주춤하더니 이달 역시 10일까지 수출액은 140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1.9% 줄었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이 ‘관세 부과→보복 관세→재보복 관세’로 이어지는 ‘난타전’을 벌이는 등 통상환경도 악화일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용 부담이 늘어난 기업들이 추가 채용에 나서기 힘들어 보이고, 통상환경이 예상보다 너무 나빠졌다”며 “가동률이 떨어지고 투자까지 부진하면서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인 3%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고용 빙하기 금융위기 뒤 최악 … “정부 정책 일자리 역주행”

정부도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고용지표가 발표된 직후 산업통상자원부는 ‘제조업 고용동향점검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양질의 안정적인 일자리로 평가받는 제조업에서조차 고용이 흔들리면 ‘고용 절벽’이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건수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내수 약화와 주요국 보호무역주의로 수출시장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등 대내외적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경제 성장의 주축인 제조업 경기를 활성화해 고용이 더는 위축되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일자리 문제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등 구조적 요인이 겹친 것이어서 단기간에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부터 감소가 시작돼 2020년 24만 명, 2024년 34만 명 급감할 전망”이라며 “고용상황에 특별한 변동이 없으면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업자 수 감소세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에 ‘올인’해도 역부족일 판에 되레 일자리에 악영향을 주는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은 채용을 줄이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방안이 끝내 무산되며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경영 압박이 더 커질 전망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이미 직장 울타리 안에 들어선 사람만 좋았지, 새로운 취업의 문을 좁게 만든다. 52시간 근무제 시행도 기업은 채용을 줄이는 인건비 증가 요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고용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근로자들에게 ‘일은 적당히 해도 돈은 준다’는 식으로 기대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런 기대감이 계속되는 한 고용 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이 일자리 증대에는 역행하는 만큼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손해용·장원석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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