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0년전 초년병 기자시절이었을때 나는 올림픽으로의 첫번째 여행을 시작했다.
그것은 매우 낭만적이었으나 대단히 먼 여행이었다. 바르샤바를 떠난 기차는 시베리아숲사이를 가로질러 불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고 거기서 나는 다시 배를 타고 일본땅 요코하마로 향했다. 64년 올림픽이 열린 도쿄에 도착하기까지는 도합 7일이나 걸렸던 것이다.
거의 모든 것에 나는 가벼운 흥분을 느꼈다. 일본국민들과 그늘이 간직해온 동양적인 문화, 근대화의 물결로 충만했던 긴자거리, 그리고 훌륭한 올림픽스타디움과 그곳에서 펼쳐졌던 위대한 스포츠의 세계. 나는 과거의 숨결이 남아 있는 박물관도 둘러보았고 파나소닉을 비롯한 첨단산업시설들도 보았다. 60년대가 중반으로 치닫고 있었던 이 시대에 일본은 유럽으로, 그리고 미국의 시장으로 그들의 국력이 뻗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내 생애 중요한 경험이 되었고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인상으로 남았다.
그 이후 나는 폴란드 통신사의 기자로 모두 8번의 하계·동계올림픽을 취재했다.
나는 세계각국에서 몰려든 선수들이 그려내는 승리와 패배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만났던 사람들, 올림픽문화행사, 올림픽을 개최했던 나라들의 경제성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타전했다.
나의 열번째 올림픽취재는 서울이었다. 동경때에 비해 이번에는 바르샤바∼모스크바∼도쿄로 이어진 나의 여로는 비교적 짧은 23시간내에 이루어졌다. 공항에 도착하자 SLOOC 유니폼을 입은 젊은 아가씨는 내게 『어디서 오셨읍니까. 제가 도와드리지요』라며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고, 나의 마음은 이내 푸근해졌다.
한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폴란드출신인지라 나는 한국입국비자를 받지 못했었지만 모든 것이 올림픽 취재카드로 해결됐고 나는 서울로 들어와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손에 손잡고」의 멜러디가 나를 즐겁게 했다 .서울올림픽은 동구의 한 사회주의국가에서 온 나에게 「성공」이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에 있는 동안 나는 새로 사귄 한국친구들과 함께 한국식당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었고 같이 테니스도 쳤으며 우리가 관심을 갖고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서울올림픽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이는 내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중의 하나였다). 『1백60개국 참가란 올림픽사상 명백한 신기록 아닌가. 더군다나 모스크바와 LA로 갈라졌던 동과 서를 한자리에 모았지 않는가. 양진영의 선수들이 같이 뛰고 던지고 달리니 세계신기록이 쏟아지고 진정한 승자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솔직이 생각할 때 소련의 「슈슈노바」같은 선수의 존재가 없이 얻어진 미국 「메리·루·레튼」선수의 영광은 다소 퇴색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미국팀이 없는 레닌스타디움의 트랙과 필드를 누볐던 소련의 육상팀도 마찬가지다.』
-불편한 점은 없었나.
『물론 다소 있었다. 셔틀버스운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경기장을 이동할 때마다 기다리는데 시간을 낭비하곤 했다. 나는 매일 약 4시간을 버스 기다리기와 타기에 써야했는데 만약 이 시간을 박물관이나 한국의 기타 문화적 유산을 방문하는데 썼더라면 훨씬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 아니겠는가.
72년 뮌헨때는 서독자동차회사 BMW가 취재진을 위해 6백대의 차량을 제공했는데 한국의 현대나 대우·기아등도 제공할만한 훌륭한 차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예를 들어 조그맣지만 안락하기 이를데 없는 프라이드가 제공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걸까.』
-무엇이 가장 인상적이었나(이 질문도 적지 않게 받았다).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렸기때문인가. 어느 때보다도 드러매틱한 승부가 펼쳐졌고 드러매틱한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했다.사실 서울자체가 드라마니까. 우리도 2차대전을 겪었지만 6·25를 겪은 한국에 비하면 그 피해정도는 별로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이른바 잿더미라고 일컬어지는 전쟁의 폐허에서 한국인들은 이토록 많은 것을 이토록 짧은 시간내에 이루어 놓았다.
실로 자랑할만한 일 아닌가. 한국으로 인해 극동은 세계에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이런 질문과 답변을 통한대화는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술집에서 이루어졌고 그 순간순간들이 나의 올림픽취재수첩에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나는 내일이면 내나라 폴란드로 돌아간다.
취재수첩에 적혀있는 모든 이야기를 폴란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64년에 이어 24년만에 세계의 이지역에 돌아왔던 올림픽은 앞으로 12년후 2000년에 북경에서 다시 세계를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지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어느 지역보다도 나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