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여고생 살해범, 수면제 먹여 범행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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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기자

지난 6월 16일 실종된 여고생 A양 가족이 집에 찾아가자 유력한 용의자 B씨가 뒷문으로 달아나는 모습이 포착된 CCTV 화면. [연합뉴스]

전남 강진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인 사건의 범인이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6일 중간 수사 결과 발표 통해 공개 #시신 부패 심해 부검 통한 사인규명 불가

강진경찰서는 6일 '강진 여고생 살인사건 중간 수사사항 발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강진에 사는 여고생 A양(16)은 지난달 16일 친구에게 '아르바이트를 간다'는 SNS 메시지를 남기고 실종됐다. 이후 실종 9일째인 24일 오후 2시53분쯤 강진 도암면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A양에게 아르바이트를 제안한 인물로 유력 용의자이던 A양 아버지의 친구 B씨(51)는 앞서 16일 오전 6시17분쯤 공사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전남 강진 여고생 사망 사건 피의자 이동 경로 및 시신 발견 장소. 김호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부검 결과 A양의 시신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됐다. 검출된 양은 0.093㎎이다. 경찰은 사건 당일 A양과 만난 것으로 확인된 B씨가 같은 성분이 함유된 약을 사건 이틀 전인 지난달 14일 병원에서 처방받아 구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불면증을 호소하며 받은 처방전에는 하루 1정이 정량인 알약 형태의 수면유도제를 28정 구매한 것으로 나와 있다. 1정의 양은 10㎎이다.

경찰은 짧게 깎인 채 발견된 A양의 머리카락을 자른 전기이발기도 B씨의 집에서 발견했다. 전기이발기에서도 A양의 DNA가 검출됐다. 전기이발기는 평소 B씨가 자녀들에게 이발을 해줄 때 쓴 것으로 2년 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B씨가 A양 시신이 발견되더라도 성별 등 신원을 확인하는 데 어려움을 주기 위해 전기이발기를 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앞서 B씨의 차량 트렁크에서는 낫이 발견됐지만, A양의 혈흔이 나오지 않아 흉기로 쓰였는지는 알 수 없는 상태다. 낫에서 발견된 A양의 유전자는 땀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B씨가 사건 이후 귀가한 뒤 집 소각장에서 태운 물건에서도 A양의 흔적을 찾았다. 탄화물에서 수거한 금속 링, 바지 단추, 천 조각 등이 A양이 사건 당일 착용한 바지, 손가방과 동일한 종류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남 강진에서 실종된 여고생의 행적을 찾아나선 경찰들. [사진 전남지방경찰청]

경찰은 B씨가 지난달 12일 A양을 만나 아르바이트를 제안한 점, 사건 이틀 전인 14일 낫과 전기이발기 등을 배낭에 미리 담아 준비한 점, 피해자의 옷을 태운 점 등을 토대로 B씨의 신분을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전환했다. 다만 성폭행 흔적 등은 나오지 않아 살인 혐의만 적용했다.

경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정확한 사망 경위를 가린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정확한 범행 방법이나 피해자의 사망 경위는 결국 가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A양 시신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된 데다 피의자인 B씨 역시 숨졌기 때문이다. 이날 발표에 참석한 국과수 관계자는 "정밀 부검을 했지만, 앞으로도 사인은 확인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살해 과정에 신체에 손상 등이 있었더라도) 시신의 부패 상태가 워낙 심해 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강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