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통령선거 과소평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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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몇 달 전 워싱턴 DC를 방문한 유럽의 한 거물정치인은 『이번 11월에 실시될 미국대통령선거에 「부시」나 「듀카키스」 중 누가 당선돼도 마찬가지다. 두 후보는 정책면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새로 취임할 미국대통령은 과거 미국대통령이 행사하던 대외적 영향력보다 훨씬 제한된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적이 있다.』
유럽은 다시 한번 그들의 희망과 현실을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대통령으로 누구를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히 무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나머지 10년 아니 그후 미국이 나갈 방향, 그리고 세계무대에 있어 미국의 위상을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다.
「부시」와 「듀카키스」는 연령상 불과 10년 정도의 차가 있을 뿐이지만, 그들의 개인적 경험·가치관 그리고 미국의 정책방향에 있어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미국이 앞으로 추구해야할 세계경제정책과 초강대국간 경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국민투표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조지·부시」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선 아마 마지막 대통령후보일 것이다. 그는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엄청난 군사적·산업적 힘으로써 완전한 승리자가 되는 역사를 경험한 세대의 사람이다.
미래의 미국대통령은 이와는 다른 세계를 경험한 세대의 사람일 것이다. 그들이 경험한 미국을 한국과 베트남에서 미국이 거둔 성공도 실패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와 비극적 실패를 경험한 세대다.
「부시」는 미국의 힘이 세계를 혼란속에서 구출하고 세계 제1의 국가로서 자리를 구축하는 역사적 현실을 목격한 사람이다.
반면에 「듀카키스」는 다르다. 그의 세대가 본 미국은 한국에서 전쟁도 평화도 아닌 휴전으로 전쟁을 끝낸 미국이었다.
그의 세대가 한국에서 본 것은 미국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공산측과의 불안한 휴전상태 그것이었다.
이번 선거는 「부시」와 「듀카키스」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결정적인 세대경험에 의해 형성된 가치관과 이의 정치적 실현방법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있다.
「부시」의 선거유세내용은 군비가 얼마나 들든지간에 미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며, 여전히 위협적인 소련에 대항,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문제는 그저 현상유지차원에서 만족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54세의 「듀카키스」의 생각은 「부시」와 다르다.
그는 세계 경제 내에서 미국산업의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려는 경제개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그는 현재의 군사자원을 더욱 빡빡하게 운영하여 군사적 세력균형을 유지하려한다.
올 가을의 선거와 선거 유세는 단지 공허한 행사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차기 대통령이 최우선으로 직면할 업무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경제적 위협인가, 군사적 위협인가를 구별해야할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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