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 밑의 침묵…"결정 안 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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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랑군AP·APF·UPI=연합】쿠데타 발생 1주일간 유혈사태를 동반한 군부의 강력한 시위진압으로 표면상 평온을 되찾는 듯한 미얀마 정국은 23일 야당 지도자들이 군부 타도 연합 전선 결성 선언을 하고 일부 대학생들이 무력항쟁을 벌이겠다며 소수민족인 카렌족에 무기지원을 받으러 가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기 시작했다.
「아웅·지」,「틴·우」, 「아웅·산·수키」등 대표적 반정부 지도자들은 지난 18일 쿠데타 발생 후 처음으로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그동안 대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들이 군사정부에 대항해 투쟁하는 모든 민주단체를 위한 조직결성을 촉구했는데 지도자들이 이에 동의, 곧 공식 결성 선언을 하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 반정부 지도자들은 또 공무원들이 파업을 종식하고 직장에 복귀할 것을 호소하는 자신들의 서명이 돼있는 소책자가 이날 랑군 시내에 뿌려진 것은 자신들의 신망을 떨어뜨리려는 악의에서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버마 군부지도자로 등장한 「사우·마웅」장군은 이날 다당제 민주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쿠데타 공약을 가급적 빨리 이행하겠음을 밝혔다고 국영 랑군 방송이 보도했다.
한편 쿠데타 발생 직후 다수의 유혈사태를 동반한 군의 시외 진압으로 정적이 감돌던 거리에는 이날 주민과 차량이 보다 .많이 왕래하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주민들도 늘어나는 등 정상상태로 되돌아가는 듯 했었으나 시내 곳곳에선 군인들이 통행버스를 일일이 세워 승객을 하차시킨 뒤 무기 소지여부를 검색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쿠데타 발생 6일째를 맞는 23일 국영 버스 노선은 운행을 재개했고 그동안 공무원의 파업으로 문이 닫혔던 관공서는 직장 복귀를 명한 군사정부의 명령에 따라 출근을 시작한 공무원들로 상당수가 문을 열었다.
또 군인들과 시청 소속 청소원들은 그동안 시위로 길거리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던 바리케이드와 쓰레기를 청소했으며 국영방송은 시위로 지난8월 중순이래 운행 중단됐던 버마 교통·운수의 동맹 격인 랑군∼만달레이선이 이날부터 운행을 재개했다고 전했다.
이 방송은 또 서남방면 군 사령관이 쌀 주생산지이자 정유공장이 있는 이리와디 지역의 쌀 거래업자·소비업자·소비재상품 상인들을 만났다고 보도함으로써 시위로 애로를 겪던 경제문제도 곧 정상을 되찾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했지만 군부가 질서를 되찾게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랑군 주재 외교관들은 2개월간 온 나라를 들끓게 만들던 반정부시위를 군부가 말끔히 진압해 버린 점을 두고 내부에 분열이 있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는 무서울 정도로 단결돼있음을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한 외교관은 이른바「시민혁명」으로 26년 독재정권을 당장 끝장낼 것 같던 반정부 세력이 이같이 힘없이 쓰러져 버린데 대해 『흔히 버마사태를 필리핀과 비교 하지만 필리핀은 「코라손·아키노」뒤에서 똘똘 뭉쳤지만 여기 버마에선 그 누구도 어떤 뚜렷한 지도자 이름을 찬양하지 않는다』면서 지도자 부재를 실패 요인으로 들었다.
그러나 이들 외교관은 어떤 상징적 인물 뒤에 줄을 서지 않는 버마인의 특성을 들면서도 수권 세력과 반정부 세력간의 싸움은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했다.
2개월간의 대규모 반정부 시외를 이끌어 온 대학생 대표들은 새 군사 정부와 끝까지 싸울 것을 맹세하고 있지만 가택 수색까지 경한 군사정부의 집요한 검거작전에 부닥치자 대부분 지하로 숨었다고 외교관들이 전했다.
군부는 무장한 시위자들과 도시 게릴라전을 벌이게될 것을 우려했는데 이는 시위자들이 48년 독립이래 중앙정부와 내전을 펴고 있는 미얀마 공산당과 연계투쟁을 벌일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외교관들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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