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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 의료지원 허점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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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박모(44.무직)씨는 지난해 711번 병원에 가 1만645일치 약을 처방받았다. 매일 병원 두 곳에서 진료받고, 진료 때마다 한 달분의 약을 탄 셈이다. 박씨가 다닌 병원은 모두 62곳, 진료받은 질환도 위장병.불면증.관절통.설사 등 무려 41가지나 된다.

박씨의 지난해 진료비는 3270만원(약값 2270만원)에 달한다. 그러나 박씨가 낸 돈은 한푼도 없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 1종이기 때문에 병원 진료비와 약값 전액을 정부가 대줬기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 "(박씨가) 약을 판매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지만 증거를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박모(60)씨는 보험 사기 혐의로 19일 구속됐다. 박씨는 장애인 등 의료급여 수급자 13명을 꾀어 병.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그는 공모한 약국에 처방전을 내고 약 대신 돈을 받는 수법으로 모두 2000여만원을 챙겼다. 사기극에 협조한 약사 14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정부가 저소득층의 진료비와 약값을 대주는 대주는 의료급여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의료급여 진료비는 2002년 1조9824억원에서 지난해 3조1765억원으로 60.2%나 늘어났다. 복지부 예산(2005년 10조3882억)의 30%가 의료급여 진료비로 나간 것이다. 정부는 의료급여 진료비가 급격하게 느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일부 환자나 병원.약국의 과잉진료가 지출을 늘리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따라 환자.병원.약국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는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 심각한 과잉 진료=현재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176만2000명이다. 이 가운데 지난해 진료일이 365일 이상인 수급자는 38만5000명에 이른다. 500일 이상은 28만4000명, 5000일이 넘는 사람도 19명이나 됐다.

연간 진료일수는 의료기관 진료일수뿐 아니라 투약 일수가 포함된다. 예컨대 고혈압.당뇨 등 만성 지병으로 1주일에 하루 병.의원을 찾아 진료를 받고 1주일치 약을 처방받을 경우 연간 진료일수는 400일을 넘기게 된다. 복지부는 같은 병으로 5일 동안 3개 이상 병원을 이용한 수급권자가 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상석 사회복지정책본부장은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노인이나 질병을 가진 사람이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부 수급권자의 과잉 진료나 과잉 투약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 주치의제도 도입 검토=복지부는 현재 8명에 불과한 의료급여 실사 대책반을 30명 늘리기로 했다. 대책반은 허위.부당 청구한 의료기관을 적발해 명단을 공개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중장기적으로는 주치의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수급권자마다 담당 의사를 지정,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현재는 수급권자가 마음대로 의료기관을 고를 수 있어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중복 진료를 받더라도 전혀 관리할 방법이 없다. 또 수급권자 1인당 연평균 의료급여비 사용 한도를 제한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정우진 연세대 교수는 "의료급여는 다른 사람의 세금으로 진료 혜택을 주는 것이므로 환자의 선택권을 어느 정도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주치의든 전담 병원이든 의료급여 환자의 의료 이용을 관리하는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철근.김영훈 기자

◆ 의료급여란=빈곤층의 의료비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제도로 1977년 도입됐다. 진료비 전액이 무료인 1종과 15%를 본인이 부담하는 2종이 있다. 1종은 근로능력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와 독립유공자.의사상자의 유족, 탈북자 등이다. 2종엔 1종이 아닌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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