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투명성이 시대적 과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몽구 회장의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긴급뉴스가 27일 발표되자 서울 현대자동차 본사 직원들이 일손을 놓고 TV를 지켜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상명 검찰총장은 27일 출근길에 '법과 원칙'을 강조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결정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도 "정 회장을 불구속 수사할 경우 관련 기업 임직원의 진술번복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국가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경제논리 대신 엄정한 법 적용에 따른 경제정의를 선택했다. 비자금 조성을 통한 1000여억원의 횡령, 현대차 계열사에 대한 3000여억원의 손해 등 대규모 기업비리가 드러난 만큼 이를 주도한 정 회장을 구속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불구속 수사 방침과 관련해서는 "부자(父子)를 동시에 구속하는 것에 대한 부담과 기업경영의 애로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 기업경영의 투명성 확보돼야=채 수사기획관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선진 한국이 되려면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가 시대적 과제"라며 현대차 수사의 원칙과 방향을 설명했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국제적 기준의 경영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검찰은 이번에 기업의 불공정 거래관행과 불법적인 부(富)의 세습을 차단하는 '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서 역할을 자처했다. 정 회장이 글로비스 등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법으로 덩치를 키운 뒤 보유 주식의 가치를 올려 이를 주요 계열사의 경영권 확보에 쓴 사실도 밝혀냈다. 옛 기아차의 부실 계열사 채무 550억원을 산업은행 등 금융권에 로비해 탕감받은 뒤 회사를 재인수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이 낭비되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도 확인했다. 현대차가 정 회장의 '1인 체제'로 운영돼 온 만큼 혐의가 무겁고 이에 따라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검찰은 밝혔다.

◆ 검찰 내부 의견도 영향=검찰 내부에서는 정 회장의 혐의 사실을 밝혀내고도 불구속 수사할 경우 '대기업 수사=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사회적 비난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검찰총장에게 전달된 주요 간부의 의견은 "(정 회장의 구속이)다소 파장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 "법대로 판단하자"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기업이 국가를 먹여 살린다"는 신중론도 있었다. 특히 수사팀 내에서는 정 회장을 불구속 처리하고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을 구속할 경우 법적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했다. 또 정 사장이 혐의 사실을 대부분 부인해 공소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도 고려됐다.

검찰은 정 회장 부자 이외의 주요 임직원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와 범위를 결정, 5월 중순께 관련자를 기소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현대차 계열사의 채무탕감 과정에서 벌어진 정.관.금융계 로비수사에 본격 착수한다. 또 현대차 사건의 단초가 됐던 김재록(46.구속기소)씨의 현대차 양재동 사옥의 인허가 로비의혹도 함께 수사할 방침이다.

김종문 기자 <jmoo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