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마르크시즘 해부하고 연암 불러내 '새 앎' 개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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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이진경:"사회주의 붕괴 이후 어떻게 혁명과 마르크스주의를 사유할 것인가 고민했다. 휴머니즘은 무서운 것이다. 인간 아닌 모든 것은 죽여도 된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마르크스도 그런 휴머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걸 넘어보고 싶다."

이진경은 1980년대 서울대 재학시절 쓴 운동권 이론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으로 유명하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한국 사회를 분석했었다. 그가 이제 마르크스를 넘어, 휴머니즘을 넘어, 서양식 근대 자체를 넘는 탈근대의 새로운 사유 세계를 펼쳐보고 싶어한다.그는 마르크스를 재해석하고 있다. 마르크스를 마르크스 자체만으로 보지 않는다. 시공간의 장벽을 뛰어 넘어 텍스트를 해체한다. 프롤레타리아를 부르주아지의 대항계급이 아니라 비(非)계급적인 소수자 개념으로 봤다.

근본주의에 빠지면 재해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진경의 재해석이 눈에 거슬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진경은 재해석의 '불온성'에 희망을 걸고 있다. 마르크스의 기본 정신도 결국 그 불온성 아니었냐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보지도 못했던 자동화.정보화시대와 생명복제의 시대에 잉여가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이진경은 '유목민(노마드)'이란 말을 유행시킨 학자의 하나다. 그는 "단물만 빨아먹고 또 다른 단물을 찾아 이동하는 자들은 유목민이 아니다. 끊임없이 이동을 해도 그 모든 이동이 오직 하나의 목적에 종속되면 유목민이 아니라 정착민, 잘 해야 이주민일 따름이다. 유목민은 불모가 된 땅을 새로운 창조와 생성의 땅으로 변환시키는 자"라고 정의 내린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불모지로 변했고, 이제 그는 그 불모지를 탈근대와 탈휴머니즘으로 새로 경작하려고 한다.

# 고미숙:"'나비와 전사'는 개인적으론 지난 10여년간 내 공부와 수유+너머에서의 삶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성과는 아니다. 회원들과의 마주침 속에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

'나비와 전사'는 수유+너머가 걸어갈 또 하나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때론 나비처럼, 때론 전사처럼 근대의 권력체계를 해체하고 싶어한다. 그는 '고전평론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개척하고 있다. 마르크스든, 푸코든, 연암 박지원이든, 동서양의 고전을 오늘의 시각에서 재해석한다.

수유+너머의 기획자 고미숙은 말한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를 통해 근대성이 얼마나 견고한 요새로 둘러싸여 있는지를 실감했고,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을 통해 근대성의 요새를 돌파하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 질주인지를 배웠다"고. 푸코가 고고학적 탐사를 무기로 근대성의 지축을 뒤흔든 전사라면, 연암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올라 종횡으로 누비는 나비란다.

고미숙은 나비면서 전사이고 싶어한다. 고미숙은 2004년 펴낸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의 자유'라는 책에서 학구열이 샘솟는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해보면 안다. 앎이란 무지개처럼 가슴을 뛰게 하고 불면의 밤을 통과하게 하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이란 것을."

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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