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 “무조건 쉬라니 그냥 1시간 때워” 장애인 도우미 “환자 놔두고 어찌 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놀이터에서 멍하니 스마트폰을 만지면서 1시간을 때웠어요. 매일 이렇게 허비해야 하다니….”

휴게 의무화 첫날 40만 명 혼란 #보조교사 배치도 제대로 안 돼

경기도 수원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모(40)씨는 2일 오후 아이들 낮잠시간에 1시간 ‘휴게시간’을 가졌다. 1일 사회복지 근로자의 휴게시간을 의무화한 근로기준법이 시행되면서 이런 황당한 경험을 했다. 새 법은 4시간 근무마다 반드시 30분씩 쉬도록 규정한다. 보육교사 33만 명, 장애인 활동지원사 6만5000명 등이 해당한다. 김씨는 “아파트형 가정어린이집 실내에 휴식공간이 없고 근처에 달리 갈 데가 없다”며 “평소 8시간만 근무했는데, 새 법규 때문에 1시간 늦게 퇴근하게 됐다”고 황당해했다. 서울 영등포구 보육교사 정모(32)씨는 “원래 아이들과 함께 식사했는데, 점심시간에 무조건 나갔다 오라고 해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었다. 아이들이 걱정돼 마음이 불편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고 말했다. 보육교사들은 밥값이 별도로 들게 된 점에 불만을 토로한다.

새 법규 시행을 앞두고 보건복지부가 보조교사 6000명을 채용하기로 대책을 내놨으나 현장에 배치된 데가 별로 없다. 아예 새 규정을 무시하는 데도 있다. 부산의 한 민간어린이집 원장은 “6개월 계도기간이라 해서 원래대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장애인과 활동지원사도 힘든 하루를 보냈다. 지체장애 1급인 서모(27)씨는 2일 활동지원사와 함께 출퇴근하고 직장에서 일했다. 활동지원사 없이는 불가능하다. 서씨는 4시간마다 휴식시간을 줄 수 없어 ‘법규 위반자’가 됐다. 위반자는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다. 서씨는 “휴게시간을 줘야 한다는데, 도중에 활동지원사를 다른 데로 보낼 수도 없다”고 말했다.

활동지원사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인공호흡기를 쓰는 와상 장애인을 돌보는 활동지원사 이모(46)씨는 “혼자 두면 사고날 수 있어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며 “근무 도중 1시간 쉬느니 1시간 일찍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체인력을 지원하고, 가족이 대신 돌보게 했지만 현실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미숙 전국활동지원사노조 조직국장은 “활동지원사 이용권 제도 대신 월급제로 바꾸고, 휴게시간을 적립했다가 한꺼번에 2~3일 유급휴가로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