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아시아 민주화 'IT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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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5일 오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는 환호의 도가니였다. 수만 명의 시민이 거리에 나와 만세를 불렀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시위에 갸넨드라 국왕이 굴복, 의회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네팔만이 아니다. 이달 초에는 태국의 탁신 친나왓 총리가 부패와 독재를 비난하는 '피플 파워(People Power)'에 밀려 물러났다.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에선 국왕이 2년 뒤 100년 전통의 왕정을 포기하고 의회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로 국민과 약속했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와 스리랑카까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 열기가 뜨겁다.

우리도 19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전 국민이 맘을 졸였기에 아시아 각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별로 낯설지 않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의 동력을 생각하면 확연한 세대차가 있다. 80년대 한국의 민주화 투쟁은 독재에 대한 시민의 자발적 항거였다. 그러나 현재의 동남아 민주화는 문명이 가져온 선물이다. 바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IT) 기술이다.

25일 AFP와 인터뷰한 네팔 청년 베드람 칸더 켄델(26) 얘기를 들어보자. "나와 친구들은 매일 인터넷을 본다. 필리핀의 피플파워도 잘 안다. 그러면서 현재 전 세계에서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부모님 세대가 조건없이 받아들인 독재나 절대 왕정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개인 자유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

IT의 힘은 시위 사태 도중 네팔 정부가 내린 조치에서도 드러난다. 시위가 한창이던 22일 정부는 카트만두 시내의 휴대전화망을 끊었다.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로 민주화 열기가 퍼지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탁신 총리의 퇴진을 가져온 태국의 총선 거부 운동에도 IT의 힘이 컸다. 젊은층의 절반 이상이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를 통해 총선 투표장에서 무효표 찍기를 촉구하는 문자메시지가 전달됐기 때문이다.

부탄에서도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자유'의 메시지를 보고 국왕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했다는 게 현지 히말라얀 타임스의 보도다.

이러한 민주화 열기는 아시아 각국이 IT의 힘을 빌려 이념과 관습을 넘어 자유와 민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최형규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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