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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돗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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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동해와 면한 일본 돗토리(鳥取)현은 유달리 우리와 인연이 많다. 1819년 1월 돗토리 아카사키(赤) 관헌은 앞바다에 표류 중인 조선 상선을 구조한다. 배에는 안의기 선장을 비롯한 12명이 타고 있었다. 강원도 평해군(현재의 경북 울진군)을 떠났다가 폭풍우를 만난 터였다. 이들은 석 달 동안 이곳에 묵는다. 이후 돗토리번(藩)의 도움으로 나가사키(長崎).쓰시마(對馬)를 거쳐 그해 9월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안 선장은 한자로 쓴 감사문을 남겼다. "…은혜를 갚지 못하고 귀국하게 돼 유감입니다. 이제 헤어지면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요…." 1991년 발견된 족자 '표류 조선인 그림'에 든 글이다. 안 선장은 귀국 후 돗토리로 갈 사례품을 쓰시마로 보냈다. 동해를 일의대수(一衣帶水)로 만든 교류다.

그 아카사키 해안엔 지금 한.일 우호교류 공원이 세워져 있다. 180여 년 전의 교류를 기념해 현청이 2003년 조성했다. 기공식 땐 안 선장 방계 후손들도 참석했다. 가타야마 지사가 앞장서 찾아낸 사람들이다. 공원은 한국 냄새가 물씬 난다. 설악산 모형의 기념비, 돌하르방, 석등롱(石燈籠)에서 기와 건축물까지.

돗토리는 한국과 얼기설기 얽혀 있다. 현은 강원도와, 요나고(米子)시 등 7곳은 속초시 등과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일본 열도 서북쪽 지역에선 유일하게 한국과 직항노선을 텄다.

돗토리엔 이런 전설도 내려온다. 다이센(大山.1750m)과 그 옆의 고레이산(高麗山.751m)을 둘러싼 얘기다. 옛날 다이센의 명성은 바다 건너 가라(韓)까지 자자했다. 이를 듣다 못한 가라의 신이 배에 가라야마(韓山)를 싣고 동해를 건너왔다. 산의 키를 재기 위해서다. 그런데 가라의 신은 구름 사이로 다이센을 보고 그만 산을 버리고 돌아가 버렸다. 고레이산의 명칭은 이 전설에서 생겼다고 한다.

독도 문제로 교류의 바다 동해가 긴장의 바다로 바뀌었다. 돗토리에 있던 측량선이 돌아가면서 파도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대통령 담화로 격랑이 일 조짐이다.

일본에선 이런 역(逆)발상, 열린 마음은 생기지 않는 것일까. 옛날에 울릉도와 견주려 배에 싣고 온 바위섬이 비교도 안 돼 먼발치에 버려두고 간 것이 한국의 독도가 됐다는. 한국엔 과거사의 고질(痼疾)을 안고서도 장수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일 간 교류가 끊겨선 안 된다. 동맹과 우방은 바뀔 수 있어도 이웃나라는 바뀌지 않기에.

오영환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