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관 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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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의 어린 역사 전병관선수가 역도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일요일이 겹친 날. 평소 같으면 산이나 들을 찾아 나갔을 국민들은 하루종일 TV앞에 앉아 있었다.
서울 하늘에 어느 나라 국기가 제일 먼저 올라가고, 국가가 울려 퍼질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 순간들이었다. 우리의 태극기는 아예 생각도 못했다. 여자 공기소총 부문에서 금메달을 점쳤던 불가리아 미녀사수 「레체바」가 뜻밖에 예선에서 탈락하고 소련의 「칠로바」가 금메달을 따냈다. 첫 영광은 소련에 돌아갔다. 이어 여자 다이빙엔 중국, 남자 자유권총엔 루마니아, 사이클 도로단체엔 동독. 서울올림픽은 그야말로 동구권의 잔치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그런데 밤늦게 TV화면에 비치기 시작한 역도경기장의 흥분과 열기는 곧바로 안방까지 전달되어 모든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전선수가 인상에서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고 한국신기록인 1백12.5㎏을 들어 올렸을 때만 해도 모두들 동메달만이라도 따 줬으면 했다. 인상에서 전 선수는 불가리아의 역사 「마리노프」,중국의 꼬마장사 「허줘캉」(하작강)등에 이어 5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용상경기가 시작되면서 그 흥분은 절정에 달했다. 우리의 「작은 거인」 전병관이 1차 시기에서 자신의 최고기록인 1백40㎏를 가볍게 들고 2차 시기에서 7·5㎏를 추가한 1백47·5㎏를 번쩍 들어올린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기록은 물론 올림픽기록을 경신하는 순간이며, 한국에 첫 메달을 안겨주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많은 국민들은 주마등같이 지난 7년을 떠올렸을 것이다. 바덴바덴이 생각나고, 최루탄이 생각나고, 그리고 난마 같은 지난날의 정치도 생각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생과 어려움을 딛고 오늘 전 세계 50억 인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랑스러운 인류의 대축제를 벌이는 가슴 뿌듯한 자부심도 느꼈을 것이다.
그 순간은 또한 그동안 태릉선수촌에서 땀 흘려온 많은 우리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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