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휴대전화 위치추적 및 기지국 수사에 '제동'

중앙일보

입력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소원 결정이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소원 결정이 진행되고 있다. 장진영 기자

검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 목적으로 특정 기지국의 통신내역 자료를 일괄 수집하거나 휴대전화를 위치추적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 #"광범위 자료 허용해 기본권 과도 제한" #앞서 송경동 시인, 기자 등 헌법소원 청구

헌법재판소는 28일 송경동 시인과 언론사 기자 김모씨 등 5명이 통신비밀보호법 제2조와 제13조가 통신비밀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헌법불합치란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법조항이 효력을 잃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 효력을 일정 기간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위헌결정 방식이다.

헌재는 “특정 시간대 사람의 위치, 이동상황이 담긴 위치정보 추적자료는 보호가 필요한 민감한 정보에 해당한다”며 “그럼에도 해당 법조항은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제공요청을 허용해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료 제공요청에 대해 ‘수사의 필요성’만을 요건으로 해 절차적 통제마저 이뤄지기 어려운 현실임을 고려하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과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설명했다. 범죄의 경중에 따라 자료 요청에 제한을 두는 등 수사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기본권을 덜 침해하는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수사기관이 위치추적 사실을 통지할 의무가 없거나 특정인이 수사 후 자신의 자료가 파기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던 점에 대해서는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에 위배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 이미지. [연합뉴스]

헌법재판소 이미지. [연합뉴스]

수사기관은 특정 시간 기지국에서 통화한 사람들의 내역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제출받는 이른바 ‘기지국 수사’를 한다. 용의자가 특정되지 않거나 수사 지역 범위가 넓은 경우 기지국 수사를 통해 용의자를 좁혀나가는 식이다. 또 휴대전화 실시간 위치추적을 실시한 뒤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을 한 날로보터 30일 내에 추적자료를 제공받은 사실을 사후 통지할 수 있다.

이런 수사 방식의 법적 근거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이다. 이법 제2조는 기지국의 위치추적자료를 포함한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수사기관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자료를 통해 수사기관은 특정인이 언제, 어디서 통화를 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법 제13조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수사나 형의 집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하고 있다고 규정한다.

앞서 김모씨는 2011년 민주통합당 당대표 예비경선을 취재하던 중 서울중앙지검이 기지국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당시 검찰은 예비경선의 금품 살포 의혹을 수사하면서 사건 현장에 있던 피의자의 통화 시각을 바탕으로 659명의 통신자료를 받았다.

송경동 시인은 2011년 한진중공업 파업 당시 이를 응원하는 ‘희망버스’를 기획했다가 경찰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위치추적했다는 사실을 알고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김창종,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소수 의견을 냈다. 이들은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정보는 기본권 제한의 정도가 심각하지 않고,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는 대상 범죄를 제한할 경우 수사 난항이나 추가 범죄 등으로 국민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법조항의 일부 개선의 여지가 있음은 동의하지만 그것이 곧 위헌을 의미하지 않으므로 입법 개선을 권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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