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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6개월 계도 갖고는 버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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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근로시간 단축에 반년 계도기간을 두기로 한 정부의 지난주 막판 용단은 일단 반갑다. 하지만 내심 뜻밖이었다. 문재인 정부 노동개혁 시리즈의 방점 격인 이 정책을 사실상 연기한 것, 그것도 ‘적폐 경제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 그랬다. 소득주도성장을 신앙처럼 받들며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 속도전을 무소의 뿔처럼 고집스레 밀어 붙여오지 않았던가.

저녁의 삶 찾아주기 넘어 경제·사회 뒤흔들 대격변 #DJ 주5일제 시행 때처럼 신중 기해 졸속비용 줄이길

그런데 이제 의문이 좀 풀린다. 성장 및 노사 정책을 입안·주도해 온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을 한꺼번에 교체한 26일 청와대의 문책성 인사를 본 다음이다. 일련의 친노동정책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원성과 언론 비판을 수구 반개혁 세력의 구시렁쯤으로 여기던 청와대 실세들이 ‘이러다 큰일 나면 뒷감당 어떻게 하나’ 하는 각성에 이른 듯한 기류가 느껴진다. 숱한 통계가 한결같았던 최악의 올 상반기 고용 쇼크도 정신을 버쩍 들게 했을지 싶다. 정부가 주저하던 민감한 보완책을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입에 올리며 슬슬 제 목소리 내는 기색도 주목된다.

분명 예고된 혼란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중앙일보 같은 신문업계만 봐도, 야근·특근이 다반사인 기자 직종을 위해 노사가 재량근로제 같은 유연 대책을 강구해봤지만 뾰족한 해답을 얻었다는 언론사를 보지 못했다. 업종·직종 불문하고 52시간의 동일 잣대를 들이댄 것부터 잘못 꿴 첫 단추였다. 그리스 신화의 악한(惡漢) 프로크루스테스-나그네를 집으로 꾀어 침대에 누인 뒤 넘치는 키만큼 톱으로 잘라 죽게 했다는 우화-를 연상케 하는 일방통행이었다.

“주 52시간으로는 원하는 취재원 만남, 기사작성을 마무리할 도리가 없다.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나는 결사반대다.” 동료에게 욕먹을 소리일지 모르지만 기자 근성이 강한 어느 중앙일보 후배 기자의 성토가 인상적이다. 헌법상 국민의 근로 의무 조항을 빼고 권리만 남기자는 것이 문재인 표 개헌안의 노동 분야 골자다. 일자리 구할 권리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누릴 권리는 국민의 천부인권이면서, 하루 열 몇 시간이고 마음껏 일하고픈 근로의 자유는 왜 보장이 안 될까.

그러려면 근로시간 단축 논의에 노동의 역사가 녹아들 필요가 있다. 노동은 고통이고 여가는 쾌락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이분법은 요즘엔 잘 맞지 않기 일쑤다. ‘올리버 트위스트’ ‘모던 타임스’ 같은 소설·영화에 나오는 19~20세기 산업혁명기 공장노동자들의 고단함은 당시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노동공급 이론의 기본 프레임이었다. 이제 노동이 즐거움이고 여가가 고통이 될 수 있는 시대다. 과로를 혐오하는 워라밸 계층이 급증하는 한편으로 일터를 간절히 소망하는 실직자 역시 연령 불문하고 쌓여만 간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성경 말씀이 쏙 들어간 지 오래다.

다음 달 시작되는 계도기간 반년 동안 4차산업 혁명을 염두에 둔 보완책도 시급하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초래하는 ‘노동의 종말’은 일자리 가뭄일 것이라는 비관론 쪽 전문가가 늘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이 모이면 “장래 공장의 직원은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이렇게 딱 둘이 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주고받는다. “사람의 직무는 개 먹이를 주는 일, 개의 임무는 사람이 고가 장비에 손대지 못하게 지키는 일” 이란다. 그렇다면 너무 많이 일하게 한다고 벌금이나 징역에 처하는 법의 약효는 얼마나 갈까.

‘살만한 나라 중 으뜸 과로 국가’의 오명을 벗자는 여망은 대세다. 요는 그 속도다. “시행해 보고 문제 있으면 고치면 되지 않느냐”는 무책임한 소리가 주무장관의 입에서 다시 나와선 안 된다. 주5일 근무제는 김대중 대통령 대선공약을 6년간 다듬어 2004년에나 시행했다. 그래서 충격도 뒷말도 적었다. 근로시간 52시간 단축도 그 속편에 해당하는 대실험이다. 엄청난 졸속비용을 물지 않으려면 6개월 말미가 아니라 6년을 더 줘야 할지 모른다.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