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무언가 달라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1면

<결승 3국> ●탕웨이싱 9단 ○구쯔하오 9단

8보(114~126)=구쯔하오에 대한 한국 기자들의 인상은 대체로 ‘자신감이 없다’는 것이다. 인터뷰할 때 구쯔하오는 고개를 잘 들지 못한다. 시선은 초점 없이 이곳저곳을 헤맸다. 자신 없는 인터뷰만큼이나 구쯔하오는 카메라 앞에 설 때도 좀처럼 패기를 드러내지 못했다. 시선은 늘 아래를 향했고, 기껏 신경을 쓴다는 포즈가 팔짱을 끼는 정도였다. 이세돌 9단처럼 매섭게 노려보는 승부사의 눈빛도 아니었다.

기보

기보

그런데 결승전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구쯔하오의 태도가 달라졌다. 2국에서 역전승을 거둔 뒤 "오늘 내 바둑에 만족한다.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당찬 소감을 밝혔다. 얼굴에는 점점 편안한 자신감이 깃들였다. 구쯔하오가 이번에 무언가를 해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그때부터였다.

참고도1

참고도1

별다른 변화 없이 진행되던 바둑은 121이 놓이는 순간, 눈이 번뜩일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121은 탕웨이싱 9단의 명백한 실수였다. ‘참고도1’ 흑1로 백 두 점을 잡고 흑5, 7로 백 한 점을 끊어 먹었다면, 승리는 순순히 그의 품 안으로 굴러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참고도2

참고도2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와서 ‘참고도2’ 흑1로 세 점을 버리고 후퇴하는 건 흑으로선 손실이 너무 크다. 흑이 123으로 잇자 백도 124로 이었다. 갑자기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대마 싸움이 시작됐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