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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종부세 개편 … 10억대는 영향 적고, 30억 이상 타격 클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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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호 01면

공시가격이 20억원을 넘는 서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112.95㎡ 소유자가 부담한 종합부동산세는 올해 529만원이었다. 하지만 내년에는 이보다 최소 14만원에서 최고 100만원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2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내놓은 ‘공평 과세 실현을 위한 종합부동산세제 개편방향’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다.

세제 개편 방향 4개 시나리오 공개 #28일 확정해 정부에 제출 예정 #다주택자는 최대 38% 늘 수도 #시장은 이미 숨 고르기 들어가 #거래 절벽에 집값 하락 우려도

종합부동산세 개편 시나리오별 아파트 종부세액

종합부동산세 개편 시나리오별 아파트 종부세액

이날 개편안에는 네 가지 시나리오가 담겼다. 첫째,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이다. 주택(6억원 이상)과 종합합산토지(5억원 이상)에 대해 현재 80%인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해마다 연 10%포인트씩 두 번에 걸쳐 100%까지 올리는 방향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이 90%이면 1949억원, 100%가 되면 3954억원의 세수 추가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재정개혁특위는 추산했다.

둘째는 종부세 세율을 올리는 방안이다. 현재 주택에 대해 0.5~2%가 적용되는데, 이를 0.5~2.5%로 높이자는 것이다. 세율 누진도도 높인다. 다만 종부세율 인상은 국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 두 가지를 합쳐 공정시장가액비율과 종부세율을 동시에 인상하는 게 셋째 시나리오다. 종부세율을 둘째 시나리오 수준으로 올리면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연 2%포인트, 5%포인트, 혹은 10%포인트 올리는 식이다. 시나리오 중 가장 강력하면서도 시행이 유력한 방안이다. 강병구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종부세율 인상과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조정 등을 적절히 반영해 최종 권고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 인상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다주택자의 세 부담은 12.5%에서 최대 37.7% 늘게 된다고 재정개혁특위는 추산했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1주택 보유자와 다주택자 간 과세를 차등하는 방식이다. 1주택자의 경우 공정시장가액비율만 연 2~10%포인트 인상하고 종부세율은 그대로 둔다. 대신 다주택자에 대해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높이는 것과 함께 종부세율도 기존 0.5~2%에서 0.5~2.5%로 높이자는 것이다.

이날 공개된 종부세 개편방안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세제 개편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밑그림인 셈이다. 세무법인 서광이 보유세 개편 시나리오에 따른 세 부담을 추산한 결과 당장 종부세율을 올리는 것보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인상 영향이 더 컸다. 공시가격 10억원인 아파트의 경우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포인트 올릴 경우 올해 40만원이던 종부세를 내년에는 5만원, 내후년에는 10만원 더 내야 한다. 고가 아파트일수록 추가 부담이 커져 공시가격 20억원인 아파트는 100만원 정도, 30억원인 아파트는 300만원 정도 종부세를 더 내야 한다.

종부세율 인상에 따른 추가 부담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공시가격 20억원인 아파트가 14만원 수준에 그친다. 세무법인 서광의 양경섭 세무사는 “이번 권고안에서 종부세율 인상폭이 최대 0.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쳐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가액비율을 지금보다 10%포인트 높은 90%로 올리고 동시에 세율을 인상할 경우 공시가격이 30억원을 넘는 서울 한남동 한남더힐 233.06㎡의 종부세는 올해보다 378만원이 오른다.

재정특위는 향후 과제도 제시했다. 취득세의 경우 세율 및 세 부담의 점진적 인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방세인 재산세와 국세인 종부세 간 세율체계 및 과세 방식 개편도 장기 과제로 꼽혔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세 강화 목소리도 나왔다. 이번 종부세 개편방안은 오는 28일 재정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특위 차원의 ‘부동산 보유세 개편 권고안’으로 최종 확정돼 정부에 제출된다. 정부는 이를 7월 말 발표할 내년도 세법 개정안에 반영할 방침이다.

20억 아파트 두 채 보유세 2649만원으로 껑충 

전문가들은 고가 주택의 경우 종부세 개편에 따른 세 부담이 당초 예상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강남권 아파트를 중심으로 거래 절벽과 가격 하락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서울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97㎡에 살고 있는 1주택자라면 318만원 수준인 보유세가 공정시장가액비율 100%를 적용할 경우 559만원으로 오른다. 현재 시세가 20억원인 것을 감안해 내년 공시가격이 15억6800만원으로 오를 것으로 가정한 분석이다.

강남의 20억원짜리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종부세를 포함한 보유세는 올해 1375만원에서 내년 2649만원으로 껑충 뛴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을 90%로 하고 세율을 0.5%포인트 인상했을 때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자문센터 팀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당초 예측했던 것보다 세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다주택자의 경우 입법 과정까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주택자에겐 공정시장가액비율과 세율을 동시에 높이는 4안이 채택되면 부담이 크다. 정부는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시가 10억∼30억원 기준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의 세 부담은 최대 25.1%, 다주택자는 최대 37.7% 늘어난다고 밝혔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심리적 압박이 가중돼 ‘거래 절벽’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공시가격이 10억원 미만인 주택은 변동이 크지 않아 강남과 강북·수도권 등의 온도차가 날 수 있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서울 강남권”이라며 “최근 2~3년간 가격 상승 폭이 가장 커 보유세 부담도 큰 데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등으로 악재가 몰려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부동산 규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참여정부 수준으로 종부세율(주택 3.0%)을 인상하면 세 부담이 22~100%까지 늘어난다”며 “주택 소유주가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전가하면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로 이어져 민간 소비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증세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김갑순 동국대 회계학과 교수는 “보유세뿐만 아니라 에너지세 등 세제 개편이라는 이름하에 본격적인 증세 드라이브가 예상된다”며 “증세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 제시 및 다양한 정책 검증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은 이미 숨 고르기 단계로 돌아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3개월간 인근 중개소 30여 곳의 거래량이 7~8건으로 지난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이번 보유세 강화 여파로 거래는 더욱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5월 전국 주택 매매량은 6만778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만5046건)보다 20.3% 줄었다. 최근 5년 평균(9만506건)과 비교하면 25.1% 감소했다. 특히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주택 매매 건수는 1764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60% 가까이 줄었다.

다만 보유세 인상안이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유세 강화가 시장에 부정적인 것은 맞지만 장기간 노출됐던 정보라 큰 충격은 아닐 듯하다”며 “급락보다는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 강남의 주택 소유자들은 그동안 집값도 많이 올랐고 세 부담 역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오히려 지방 집값이 하락하는 양극화가 더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월세 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희순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 부담이 커진 만큼 이를 임대료에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재·염지현·하남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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