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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일본인 수용소 떠올려” 로라 부시도 트럼프 이민정책 비판

중앙일보

입력

“가슴이 아프다. 잔인하고, 비도덕적이다.”

아버지의 날 맞아 WP에 기고, “잔인·비도덕적, 가슴 아프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전 퍼스트레이디가 17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가족 분리 이민정책에 대해 이 같은 쓴소리를 쏟아냈다. ‘아버지의 날’을 맞아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을 통해서다.

로라 부시 여사. [로이터=연합뉴스]

로라 부시 여사.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기고문에서 “우리가 아버지와 가족의 유대를 기념하기 위해 따로 정해 놓은 일요일(아버지의 날), 나는 부모로부터 떨어지는 아이들을 본 수백만 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불법으로 국경을 넘다 붙잡혀 부모와 격리된 어린이가 2000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들 중 100명 이상은 4세 미만”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국경을 강화하고 보호할 필요가 있지만, 이런 무관용 정책(zero-tolerance policy)은 잔인하고, 비도덕적이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썼다.

로라 부시 여사(왼쪽)와 딸 제나 부시. [AP=연합뉴스]

로라 부시 여사(왼쪽)와 딸 제나 부시. [AP=연합뉴스]

로라 부시는 특히 이것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수용소를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 행정부는 2차 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 같은 사태가 재발할 우려를 우려해 11만여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억류시킨 바 있다.

그는 수용소를 “미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에피소드 중 하나”라고 묘사하면서 그 부작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조치가 트라우마를 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억류된 일본인들은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이 두 배 높고, 억류되지 않은 사람들보다 조기에 사망한다”면서다.

부시 여사는 “미국인들은 기근이나 전쟁으로 황폐해진 지역에 인도적 구호를 보내는 도덕적인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우리는 사람들을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봐야 한다고 믿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포용에 자부심을 갖는다”라고도 했다. “우리가 진정 그런 나라라면, 우리의 의무는 구금된 아이들을 그들의 부모와 재결합시키고, 부모와 아이들을 분리하는 것을 멈추는 것”이라면서다.

이어 “우리 이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만, 무관용의 불공정은 답이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고(故) 바버라 부시 여사가 생전 워싱턴에 있는 ‘할머니의 집(Grandma’s House)’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워싱턴포스트 캡처]

고(故) 바버라 부시 여사가 생전 워싱턴에 있는 ‘할머니의 집(Grandma’s House)’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워싱턴포스트 캡처]

부시 여사는 시어머니이자 미국 ‘국민 할머니’ 바버라 부시가 29년 전 워싱턴에 있는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할머니의 집은 에이즈를 발병시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유아 보호시설이다.

그는 “바버라 부시는 도노반이라는 이름의 죽어가는 아기를 안아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용기가 아니라, 단순히 ‘올바른 일’로 봤다”고 덧붙였다. 당시 에이즈 환자는 스치기만 해도 전염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는 백혈병에 걸린 3살짜리 딸 로빈을 잃은 바버라 여사가 “딸이 사망한 후 아이를 잃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모든 어린이는 인간의 친절, 연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고도 덧붙였다. 기고문 끝에는 “이 나라는 현재의 위기에 대해 더 친절하고 자비롭고 도덕적인 대답을 찾을 수 없나”고 물은 뒤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대안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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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CNN 등에 따르면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역시 “민주 공화 양당이 궁극적으로 힘을 합쳐서 성공적인 이민 개혁을 이루길 희망한다. 법을 따르는 나라가 필요하지만 가슴으로 다스리는 나라 역시 필요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트위터에 “아이들은 협상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며 “그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모든 부모에 대한 미국의 믿음과 지지를 재확인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남서부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오는 모든 밀입국자를 기소하고 아이들은 법률에 따라 부모와 격리하는 ‘무관용 정책’을 본격 시행했지만 이를 두고 비인도적 조치라는 비판과 국경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처라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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