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인민일보·TV 연일한국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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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아시아의 로마」로 불리며 인류역사를 생생히 간직하고있는 중원의 고도. 근40년에 걸친 깊은 동면에서 깨어나 이제는 거대한 몸집을 꿈틀거리며 승천대길을 꿈꾸는 대륙의 심장부 북경.
북경은 금단의 계를 깨뜨린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뜻밖의 손님 호돌이를 얼굴 붉히며 사립문을 여는 처녀의 표정으로 수줍게 맞아들였다.
8월 25일 오전 10시 천안문광장.
희뿌연 아침 안개가 자욱히 드리운 천안문 광장에 난데없는 호돌이가 등장하자 광장에 있던 수백 명의 인파가 일시에 탄성을 터뜨리며 호돌이를 에워쌌다.
『이게 뭐죠.』『이 호랑이는 무엇에 무엇에 쓰는 겁니까.』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져 나오고 호기심에 찬 중국 어린이들은 호돌이의 꼬리를 잡아당기며 좋아라 소리친다.『이 호랑이는 단순한 호랑이가 아니고 1988년 한성오림필극 길상물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이다』는 설명에 그제 서야 이해가 가는 듯 그들은 너도나도 호돌이에게 악수를 청하며 자신들이 휴대하고 온 카메라에 호돌이의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또 중국인뿐만 아니라 일본 오사카에서 왔다는 일본인 관광객들도,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북경을 찾았다는 미모의 중남미여인도 호돌이와 중국의 상징인 천안문 앞에서 역사적인 기념촬영을 하게 해달라며 호돌이 곁을 떠날 줄 모른다.
문자 그대로 호돌이의 열풍이, 나아가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수백만 군중을 수용할 수 있다는 광활한 천안문 광장을 순식간에 뜨겁게 달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비록 이념과 체제상의 문제로 아직까지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않아 자유스러운 왕래가 불가능하지만 분명 12억 중국인들은 서울올림픽의 상징인 호돌이를 반갑게 맞아 주었으며 그들 역시 한성오림필극이 성공리에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었다.
호돌이의 등장은 중국의 저력을 과시하는 만리장성에서도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만리강성에 오르지 않고서 어찌 중국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부도장성비호한)라는 기념비가 선명한 팔달령에 호돌이가 나타나자 장성을 찾았던 관광객들도 천재일우의 호기를 놓칠세라 여기저기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호돌이 주변에서 떠날 줄 모른다.
팔달령 입구에 마련된 휴게소에서 1988년 오운회 지정음료(서울올림픽 공식지정음료)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가구가악(코카콜라)을 마시며, 서울올림픽 공식필름마크가 새겨진 코닥칼라 필름을 자신들의 카메라에 끼워 넣으며 중국인들은 서울올림픽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우상인 체조의「리님」(이령)이나 다이빙의「탄량더」를 얘기했다.
이 같은 서울올림픽의 열기는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중국의 일간지를 비롯해, TV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일보(차이나데일리)·체육보 등은 매일 서울올림픽 엠블럼마크를 실으면서 서울올림픽 에 관련된 특집기사를 다루고 있었으며 중국 중앙전시대 (TV)역시 서울올림픽의 시설 및 준비상황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있었다.
그러나 호돌이가 만난 상당수의 중국인들은『매일 TV를 통해 한국대학생들의 시위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올림픽이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습니까』라는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물론 중국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유럽국가 및 미주지역국가들에서 한국대학생의 시외현장을 확대 보도하고 있어 이로 인해 한국의 실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로서는 당연한 의문 제기겠지만 그 같은 질문을 받고 돌아서는 호돌이의 발걸음은 결코 가벼울 수가 없었다.
서울올림픽이 중국인들에게 갖는 의미는 세계 어느 국가에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중국은 문화혁명이 끝난 80년대 초부터 스포츠강대국으로의 부상을 꿈꿔왔으며 이 같은 그들의 열망은 90년 북경아시안게임 유치 및 2000년 하계올림픽 유치희망에서도 잘 읽을 수 있다.
전산·통신·서비스·교통분야 등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기술수준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북경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 지상과제이며 이 같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울아시안게임이나 88서울올림픽이야말로 필수적으로 마스터해야할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필요성 때문에 중국은 86아시안게임 때 1백 명에 달하는 조사팀을 파견했으며 이번 서울올림픽 때도「리멍화」(이몽화) 체육성장관을 수뇌로 하여「장바이파」(장백발) 북경부시장 및 종목별 회장 전원이 서울행 전세기를 타게되며 실무조사반도 무려 50여명에 이르고 있다.
또 중국이 올림픽에 참가한 이래 사상최대규모인 4백42명이라는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하는 것이나 보도진숫자가 1백25명에 이르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인 스스로의 설명이다.
아무튼 서울올림픽의 상징인 호돌이의 배경 방문은 차기 아시안게임 개최지, 나아가 미래의 올림픽개최지를 미리 방문했다는 것 이상의 값진 의미와 교훈이 됐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글 : 문일현【(차이나 오픈 배드민턴대회 참가 한국선수단 임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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